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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본질은 생각하고 활용하는 것…국어 시수 늘려 해결될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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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사과’가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한 웹툰 작가 사인회 참가 예약에 차질이 빚어지자 주최 측이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공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그런데 ‘깊고 간절하다’는 의미의 한자어인 ‘심심(甚深)한’을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우리말로 오해한 듯한 트위터들이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나” 등의 항의 댓글을 줄줄이 올린 것이다.
어이없는 오해 상황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고, 일의 전후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면서 일각에선 네티즌들의 낮은 문해력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요즘 사회적 화두로 급부상한 문해력 저하 문제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교육방송(EBS)이 방영한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는 문해력 저하 문제를 새삼 널리 부각시킨 계기가 됐다. 급기야 교육부는 기초 문해력 교육 강화를 위해 초등 1ㆍ2학년 국어 시수를 연간 34시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당신의 문해력’ 자문 학자이자,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로 10년 이상 문해력 교육을 연구해온 조병영 한양대 교수는 “문해력 이슈는 단순히 어휘력이나 이해력 저하를 넘어서는 문제”라며 “국어 시수만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조 교수로부터 문해력 문제의 실상과 사회ㆍ교육적 과제 등에 관한 진단 및 해법을 듣는다.
-문해력 위기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돌고 있다. 문해력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다. 하지만 글이란 무엇이고, 왜 우리가 글을 읽고 써야 하며, 언제 어디서 누구와 읽고 쓰는가를 생각해 보면 문해력의 의미는 훨씬 더 넓고 복잡해진다. 문해력의 원래 말이 ‘리터러시(Literacy)’인데, 이는 문자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텍스트를 읽고 쓰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배우고, 일하고, 협력하는 일련의 실천적 의미 구성(meaning-making) 경험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읽고 쓰면서 개인적 목적을 달성하고, 직업적 성취를 이루며, 사회적ㆍ공동체적 과정에 참여한다. 그러니 문해력을 좀 어렵게 정의하면 '텍스트를 가지고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는 실용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문해력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일각에선 문해력을 그저 ‘글을 읽고 쓰는 능력’ 정도로 이해하고 젊은이들이 통상적 어휘조차도 모른다며 곧바로 문해력 위기를 얘기하지만, 그런 좁은 시각으론 실상을 공연히 과장하거나 왜곡해 올바른 진단과 해법 마련을 되레 방해할 위험이 크다.”
-강단에서 학생들의 문해력 문제를 느낀 경험이 있나.
“‘심심한 사과’ 얘기와는 결이 다르다. 되레 과거보다 지금 대학생들이 정보가 담긴 글을 이해하는 능력, 여러 가지 자료들을 조사하는 능력, 다양한 정보원을 활용하는 능력 등은 더 좋다. 어려운 한자로 이루어진 학술용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가르쳐 주면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 영어 기반 학술용어는 기성세대보다 훨씬 익숙해한다. 세대 간 언어 경험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다만 과제 해결을 위해 책 한 권을 긴 호흡으로 꼼꼼히 읽는다거나 하는 걸 꺼리는 경향은 보인다. 발췌독이나 짧은 글 읽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노력이라면, 서적이나 전문자료들을 찾아 읽고 과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거나 동영상 자료 등을 통해서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해당 사안을 이해하는 방식에 더 익숙한 듯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쟁점이나 문제에 관한 깊은 이해보다는 정보의 습득, 당면한 문제의 신속한 해결에 집중하는 경향이 커 보인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 실태는 어느 정도인가.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저하되었다고 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국가 수준의 데이터는 없다. 기능적 측면(정보의 이해와 활용)에서 본다면, 오히려 젊은 세대 문해력이 기성세대보다 높다(10여 년 전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 2008년에 국립국어연구원 기초 문해력 조사에서도 젊은 세대일수록 문해력 점수가 높았다. 최근 국민실태조사를 보면 책도 어른들보다 청소년들이 더 많이 읽는다. 문해력 문제에 관한 최근 통념이 다소 왜곡돼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2018년 ‘읽기 문해력(Reading Literacy)’ 검사에서는 한국 학생들의 평균점수가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 지적됐다. 특히 ‘비판적 읽기’ 부문에선 국제적으로도 매우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비판적 읽기의 가장 기초적인 능력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것인데,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평글을 읽고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문제에서 정답률이 고작 25%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OECD 평균은 물론, 우리와 견줄 만한 나라들에 비해서도 매우 저조한 성적이다. 정보를 찾고 이해하는 능력은 좋지만, 정보의 본질과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은 떨어진다고 볼 만한 결과다. 우리 학생들의 문해력 문제 실상과 가까운 데이터라고 평가한다.”
-문해력 문제가 왜 빚어지고 있다고 보는가.
“PISA 평균 점수 하락의 원인을 따져보면, 우선 글을 읽고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해서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하위권 학생들의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15년 전 4~5%에서 2018년 15% 정도까지 약 3배 증가했다. 환경적, 문화적, 언어적 이유로 기회의 불평등이 생겼고, 그걸 학교에서 제대로 보완해 주지 못한 것 같다.
‘비판적 읽기’ 능력이 취약한 이유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읽기ㆍ쓰기와 학교 밖에서 경험하는 읽기ㆍ쓰기가 내용, 양상, 맥락 측면에서 적잖이 괴리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정엔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 비판적 독서 등의 성취기준과 학습활동이 있지만, 실생활에 응용될 정도로 학습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 결과가 매우 일상적인 텍스트로 ‘비판적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PISA 점수로 나타났다고 본다. 학교 문해력 교육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고 문제해결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텍스트를 전반적으로 깊고 넓게,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능력과 동기의 저하와 관련해서는 의사소통 및 생활 환경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의 삶에서 요구되는 문해력의 목적과 맥락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환경오염 문제 리포트를 쓰기 위해 독서하는 상황을 예로 들면, 과거 학생들은 여러 주장의 갈래들을 파악하고 소화하는 게 우선이었던 반면, 요즘 학생들은 인터넷 검색을 위한 키워드를 추출하는 과정으로 텍스트를 접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기성세대가 보기엔 요즘 학생들이 책을 읽어도 뭔 소린지조차 모른다는 식의 걱정을 하는 것이다. 숲을 헤매다 정작 산을 보지 못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선 온ㆍ오프라인을 아울러 다양한 정보, 텍스트,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성숙한 ‘문해자’를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초ㆍ중ㆍ고교 기존 국어교육과정에서 문해력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은 어떻게 반영되어 있나.
“교육과정상 현재 문해력 교육은 크게 두 가지 맥락이 있다. 하나는 기초학력으로서의 문해력이다.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의 한글 깨치기로 교육되거나, 읽기ㆍ쓰기 능력이 부족한 학습부진아 교육과 연동된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기능적이고 좁은 의미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문해력 교육은 기초학력 테두리를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취 중심, 교정 중심의 교육에 머무르고 만다. 기초 문해력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학습자 정서, 사회적 환경의 측면을 두루 고려하고 인지과학, 학습과학의 성과들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또 다른 맥락은 질문처럼 국어교육이다. 국어 교육과정 안에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가 있고,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매체 영역도 신설된다. 이 영역들에서 다양한 능력과 지식, 태도를 가르치게 되어 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리터러시의 또 다른 해석어인 ‘문식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됐고, 그게 국어 교육과정을 언어 및 내용 중심에서 사고 중심, 역량 중심, 맥락 중심으로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다만 문해력 교육은 국어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어교육에서 교과 공통 문해력을 가르친다면, 역사나 과학 같은 다른 교과별로도 맞춤형 문해력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나 학생이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꼽는 게 ‘국영수’ 아닌가. 그럼에도 문해력 문제가 심각한 건 교육과정이나 학교 수업의 문제점도 없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국어 수업만으로 문해력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 획일적인 교과서 중심 교육, 글의 맥락보다는 단답형 문제풀이 정도에 맞춰진 기능 중심 교육, 글을 읽는 목적이 불분명한 방임적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 교과 수업 시간에 배우는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 아이들을 다양한 상황에서 스스로 꾸준하게 배울 수 있는 학습자, 다양한 문제와 쟁점을 분석하여 해결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역량 있는 직업인,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현명하게 판단하고 의사소통하는 협력적 공동체 구성원이 되는 데 필요한 문해력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수학 과목에서는 수학적 텍스트를 읽고 활용하여 수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영어 과목에서는 외국어 텍스트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역량, 그렇게 해서 텍스트를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 있게 읽고 쓸 수 있는 정체성을 키워줘야 한다.”
-교육부가 최근 문해력 증진을 위해 초등학교 국어수업 시수를 34시간 늘리기로 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수업 시수를 늘린다고 문해력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 늘어난 수업 시수는 본격적 교과학습을 위한 토대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중적으로 더 많이 한글교육을 실시하라는 의미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한글을 몰라 교과서를 못 읽거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라는 취지인 듯하다. 그런데 34시간 가지고 그런 일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문해력 교육에 대한 대중적 요구에 부합하는 것 같지만, 현실적 효용성은 미지수다. 34시간 동안 교사들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방법에 대한 안내도 지침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부의 생색내기이거나,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는 척하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문해력 증진을 위해 학생들이 깨우쳐야 할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맥락성’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텍스트는 사회적 결과물이다. 텍스트를 만든 사람, 그 사람의 관점과 이해 및 처한 환경에 따라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 유통 경로, 질과 가치가 달라진다. 텍스트를 읽는 사람에 따라 텍스트의 쓰임과 가치도 달라진다. 사람은 늘 어떤 맥락 안에 놓여 있으며, 그 맥락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텍스트에 영향을 미친다. 정답찾기 식의 읽기 쓰기, 문제풀이, 시험보기 등은 일상의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첨예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정확한 근거를 갖고 의미를 추론하고 해석하는 능력,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적극 활용하되 자신이 가지고 있을지 모를 편견과 선입견, 관점과 지식의 한계와 편향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은 다분히 맥락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태도를 요구한다.”
-청소년과 대학생 등의 문해력 증진을 위해 사회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방안을 꼽는다면.
“우선 한글 능력, 어휘력, 독서력 정도로 좁게 이해되고 있는 문해력이라는 말을 리터러시의 관점에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초학력이나 학업성취도라는 자칫 선정적 기삿거리 정도로 그칠 수 있는 관심을 보다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문해력을 학습의 도구, 시민 역량과 연결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개념화를 통해서 기초학력으로서의 문해력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관련 전문 인력 양성도 땜질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경험과 관심이 많은 현장 정규 교사들을 재교육하여 학생과 교사를 모두 도와줄 수 있는 문해력 코치의 개념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리터러시 혹은 문해력 교육이 범교과적으로 연계될 필요가 있다. 국어 교과 안에 머무는 읽기 쓰기 의사소통 교육은 한계가 크다. 국어교과 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배우되, 각 내용 교과의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텍스트, 정보, 자료, 데이터, 미디어를 탐색, 분석, 평가, 종합, 활용할 수 있는 문제해결적, 실용적 문해력의 경험과 학습이 필요하다.”
-문해력 증진은 물론이고 한글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한자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어떤 입장인가.
“국어교육과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한자교육 반대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필요하다는 답변이 훨씬 많아 의외였다. 국어화한 한자어가 많은 만큼, 정확한 어원 지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 나는 한자 병기나 혼용은 필요치 않고 오히려 의사소통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전문적 내용을 공부할 때 등장하는 낯선 어휘와 의미를 추론하고 이해하는 보조수단으로 한자 지식은 유효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한자 교육은 일방적이고 당위적인 주장을 넘어 한자 지식과 문해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분석을 토대로 실효적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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