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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남'이 '이대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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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죽이고 지우는 저주의 말이 있다. 감히. "감히 내 사랑을 뿌리쳐? 죽어!" "감히 남성의 몫을 욕망해? 꺼져!" "감히 목소리를 내? 닥쳐!"
그 저주가 이란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을 죽였다. 감히 히잡을 '건성으로' 썼다는 이유로 체포돼 사흘 만에 의문사한 2000년생 마흐사 아미니. 시신에 남은 흔적과 목격자의 증언은 경찰의 가혹행위를 가리키지만, 정부는 심장마비가 사인이라며 건성으로 덮었다. 복장 불량의 죄를 물어 여성을 가두고 채찍질하는 것이 이란에선 어차피 합법이다.
'히잡 시위'는 지난달 그렇게 시작됐다. 더는 참지 않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히잡을 불태웠다. '무고한 남성을 성적 유혹에 빠뜨리는 불온한 신체 부위'라는 누명을 쓴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잘라냈다. 히잡도, 머리카락도 없는 채로 날아갈 듯 춤을 췄다.
신정 국가 이란에서 여성들이 히잡을 단체로 벗어 던진 건 처음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처음은 또 있다. 여성들이 반체제 투쟁을 주도하는 것, 남성들이 그런 여성들을 지지하는 것, 그래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싸우는 것 모두가 이란 역사상 처음이다.
시위 현장엔 어김없이 젊은 남성들이 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여성들과 나란히 행진한다. 실탄 진압으로 시위대에서 133명(3일 국제인권단체 집계)이 죽어 나간 뒤에도 남성들은 떠나지 않았다. 연대는 확장 중이다. 이란 남성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주 월드컵평가전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으로 힘을 보탰다.
'모두의 싸움'이 되자 싸우는 힘이 커졌다. '편 가르기'가 됐다면 달랐을 것이다. "요즘 여자들 왜 자꾸 설쳐? 여자만 살기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 이슬람의 권위가 허물어지면 남자들 손해라고. 망할 페미니즘!" 남성들의 반응이 고작 이랬다면 이란의 성직자와 정치인들은 지금처럼 두려워하는 대신 조용히 웃고 있을 것이다.
사는 게 고될 때 '나보다 약자'에게 분풀이하는 건 인간의 못된 습성이다. 이란 남성들의 삶은 고되다. 서방의 오랜 경제 제재와 비민주적 정치 체제 탓에 가난하고 무력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파괴적인 '분풀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친정부 시위에 나온 구시대의 수혜자들과 그들이 떠받치는 무능한 권력자들을 향해 정확히 분노했다. 히잡은 상징물일 뿐 여성들이 더 큰 싸움을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대한민국 여자들 히잡 억지로 써 봐야 정신 차리지." 기사에 단골로 달리는 댓글이다. 정신 차릴 대상이 여성이 아니란 걸 히잡 본고장의 남성들이 더 먼저 깨우친 건 아이러니다.
차별의 역설은 공평하다는 것이다. 차별은 '오늘의 약자'를 노린다. 시시각각 바뀌는 세상에선 강자와 약자의 자리가 시시각각 바뀐다. 차별의 영원한 수혜자란 없다. 이를 테면 영남 태생의 명문대 출신 정규직 이성애자 남성은 거의 100%의 확률로 병든 노인이 될 것이다. 늙기 전에 극빈해질 수도 있고, 장애인, 난민, 이주노동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차별은 없다고 외면하거나 차별은 불가피하다고 강변할 힘을 끌어 모아 '일체의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세상이 바뀐 뒤에 살려 달라고 감히 울어 봐야 너무 늦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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