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넋두리’에 공식 해명 낸 실책
MBC ‘비속어 논란’ 방송 고발도 한심
여야 ‘정치 자해’ 끝내고 국정 챙겨야
윤석열 대통령 주변과 여당, 대통령 비서실의 총체적 무능에 대한 질타가 몰아치는 요즘이지만, 이쯤 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MBC 취재기자와 보도국장, 사장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끝내 고발한 걸 두고 하는 얘기다. 여당 측에선 대통령 음성을 ‘확실히 특정할 수는 없다’는 정도의 전문가 의견을 얻어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MBC를 고발한 건 사태에 되레 기름을 붓는 무모함의 반복일 뿐이다.
이쪽의 아둔함과 저쪽의 저열함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나라와 정치를 온통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 개탄스러운 상황을 차분히 돌아보면, 애초부터 이렇게까지 돌아갈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우선 사태의 발단이 윤 대통령인 건 명백하다. 정상회담을 예고하고 미국까지 갔다가 줄 서서 악수 한 번 하고 돌아서려니 멋쩍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공개 장소에서 비속어까지 섞인 극히 사적인 어투로 넋두리를 흘린 건 분명한 실수였다.
다만 일각에선 대통령 발언을 ‘공개석상에서 장관과 대통령 참모를 상대로 한 공적 발언’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공개석상’ ‘공적 발언’ 같은 교묘한 단어를 써서 논란의 증폭을 바라는 것 같은데,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다시 보라. 그거 그냥 멋쩍은 혼잣말에 불과하지 않은가.
다음, MBC의 대통령 발언과 자막 방송이다. 윤 대통령의 넋두리에 “XX들”과 “바이든”으로 들릴 만한 부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의 민감한 발언이기에 방송에 앞서 공기(公器)로서 최소 두 가지는 고민했어야 했다. 우선 대통령 발음이 취재진이 추정하고 자막화한 단어와 일치한다고 단정할 만한 객관타당한 근거를 확보했어야 했다. 둘째, 사적인 중얼거림에 불과한 얘기를 외교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방송해 국내외에 널리 퍼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를 숙고했어야 했다. 그런 생각조차 없는 폭로라면 파파라치와 다를 게 뭔가.
방송 등의 ‘돌발영상 뿌리기’에 대해 15시간 만에 나온 대통령실의 해명은 결국 어리석음의 기념비를 세운 격이 됐다. 기자들의 물음에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혼잣말이므로 논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MBC의 사실 확인 없는 자막영상 방송은 매우 유감이다” 정도로 답했으면 됐을 것이다. 그걸 공연한 억지를 쓰면서 일을 키웠다.
대통령실 대응이 아무리 같잖았다고 해도, 외교장관 해임안까지 낸 야당의 행태 또한 한숨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이 와중에 자제하는 듯했던 이재명 대표까지 “지금 들어도 '바이든' 맞지 않느냐. 욕했지 않느냐”라며 국감 전야에 새삼 ‘자막’을 기정사실화하며 논란에 기름을 붓고 나선 건 우려스럽다. 이런 대응 대신, “대통령의 비공식적 언사를 두고 정치적 논란을 키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논란을 끝내자”고 했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싶다.
가장 답답한 건 역시 여당 내 실세들의 행태다. 비서실이 헤매면 당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상황 해소를 도모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MBC 고발에 그치지 않고, 권성동 의원은 야당을 ‘보이스피싱 집단’이라거나, ‘형수 욕설’까지 꺼내 이 대표를 공격하는가 하면,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대표연설에서 야당과 MBC를 강경 질타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번 정기국회는 경제 ‘퍼펙트스톰’ 우려 속에서 내년 예산안은 물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민생을 뒷받침할 절실한 법안들에 관해 여야의 협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제발 4일 국감부터는 아둔함과 저열함이 뒤엉킨 쓸데없는 ‘정치 자해’를 멈추고, 국정을 챙기는 성의라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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