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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묻되 튀려 하지 말자

입력
2022.10.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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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오른쪽 첫 번째)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9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동빈(오른쪽 첫 번째)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9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격호 총괄 회장도 100% 동의했다. 내년(2016년) 2분기까지 상장할 계획이다."

7년 전인 2015년 9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에 아버지가 반대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표정은 단호했다. 진지한 표정에서 나온 그의 답변 이후 의원들은 더 이상 같은 내용을 묻지 않았다. 시장이나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국감은 '신동빈 청문회'였다. 그가 국회 본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카메라 수백 대가 따라다니며 움직임 하나하나를 담았다. 방송사들은 하루 종일 그의 목소리를 내보내느라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그룹(지금은 롯데가 삼성, SK, 현대차, LG와 함께 5대 그룹) 총수 중 처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왔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에다 롯데는 일본 기업 아니냐는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여론이 너무 나빠졌다.

그런데 신 회장의 이날 출석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금이야 유튜브로 국회 주요 일정을 실시간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라이브 방송 자체가 드물었기에 큰 결심이 필요했다. 더구나 평소 대중 앞에 서기 꺼리는 은둔의 최고경영자(CEO)라 불리던 그가 한국말로 또박또박 답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심지어 일부 의원들의 엉뚱한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던 표정은 보는 사람들도 피식 웃게 했다.

신 회장이 물꼬를 트면서 기업 CEO들이 더 이상 국회에 나오는 걸 피하기 쉽지 않아졌다. 물론 지금도 많은 CEO들이 해외 출장, 몸 상태 등을 이유로 국정감사에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 여론은 예전처럼 '그럴 수도 있지'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기업이나 CEO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한 대기업 국회 업무 관계자는 "물론 안 가면 좋지만 예전처럼 절대 가선 안 된다는 분위기는 없어졌다"고 했다. 오히려 전략적으로 이용해 볼 만한 자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한다. CEO 자신이나 기업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고, 가상화폐·인공지능(AI)·자율주행·플랫폼 등 새로운 비즈니스 업계 종사자들은 애로사항이나 법, 제도에서 고칠 점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회의 자세다. 사실 의원 한 사람이 증인을 불러 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5~7분 정도. 만약 2, 3명을 불렀다면 1명당 3분이 채 안 된다.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과거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일단 나오게 하자는 의원실이 있다"며 "심지어 5명 넘게 부르려는 곳을 보면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실제로 기껏 증인으로 불러놓고 질의 한 번 못 받고 집에 가는 CEO들이 해마다 몇 명씩 나온다.

어렵게 부른 증인을 앉혀놓고 맥락에 맞지 않는 발언으로 망신 주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증인 출석을 앞두고 기업 관계자들은 보좌진을 만나 오랜 시간 논의를 한다. 그런데도 막상 의원들은 사전 준비 부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신동빈 회장에게 당시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과 일본이 축구 시합을 하면 한국을 응원하느냐"고 물어 모두를 당황케 했다.

제발 4일부터 시작하는 올해 국감을 앞두고 의원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길 바란다. 그래야 기업 관계자들이 괜히 나왔네라는 후회는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박상준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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