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심장이 향했던 음악

입력
2022.09.29 20:00

프레데리크 쇼팽. 1975년 폴란드에서 쇼팽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우표. ⓒ게티이미지뱅크

"시신에서 심장을 꺼냈다고요?" 쇼팽의 유언을 접한 김구라 MC는 엽기가 따로 없다며 화들짝 놀랐다. 함께 출연하고 있는 방송에선 예술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번 녹화의 주인공은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이었다. 쇼팽의 음악엔 실향민의 정서가 스며 있다. 스무 살에 러시아가 지배하는 폴란드를 떠나온 쇼팽은 19년 후 파리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고국의 품으로 한 번도 돌아가지 못했다. 39살의 짧은 생을 살며 인생의 절반을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버틴 셈이다.

그의 유언은 각별했다. '나의 심장을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져가 달라.' 쇼팽의 사망을 확인한 의사는 조심스레 시신에서 심장을 분리했고, 병 속에 보관된 심장을 건네받은 쇼팽의 누나는 품속에 단단히 숨긴 채 남매의 고향인 폴란드로 향한다. 왜 굳이 심장만 분리했을까. 화장한 뼛가루라면 훨씬 안전하고 순탄하게 이동시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쇼팽에게 심장은 영혼이 깃들어 있는 장기와 같았다. 쇼팽은 음악가답게 고향의 선율과 리듬을 통해 망향의 그리움을 해소한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폴로네즈(Polonaise)와 마주르카(Mazurka)다.

우리로 치면 세마치나 굿거리장단을 피아노곡에 녹여낸 것처럼 쇼팽은 폴란드의 민속 춤곡인 마주르카와 폴로네즈의 리듬을 적극 활용했다. 두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는데 마주르카가 소박한 일상의 무곡이라면, 폴로네즈는 위풍당당한 왕궁의 춤곡이었다. 쇼팽은 이 두 리듬을 자유롭게 변화시키면서 춤곡이란 기능음악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했다. 쇼팽 덕택에 고전음악의 예술장르로 튼튼히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폴로네즈는 폴란드 왕의 대관식에서 추던 춤곡으로 두 번째 박에 독특한 강세를 지니고 있다. 종종 가사를 입혀 노래로 불리기도 했는데 폴란드를 향한 애국심이나 의협심을 드러내며 민족정신을 북돋웠다. 2015년 열렸던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우승뿐만 아니라 폴로네즈 op.53 '영웅'을 연주하면서 폴로네즈를 가장 훌륭히 연주한 참가자에게 수여하는 상을 움켜쥐기도 했다.

왕궁의 DNA를 갖고 있는 폴로네즈와 달리 마주르카는 시골의 순박한 음악이다. 마주레크, 쿠야비아크, 오베레크 등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지닐 만큼 토착적인데 쇼팽은 유년시절부터 어머니가 부르는 쿠야비 지방의 민요를 들으며 성장했으니 정서적으로 가까웠다. 하지만 민요를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간결한 양식 속에서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흙냄새 나는 폴란드 시골의 소박한 음악을 전 세계의 콘서트홀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순전히 쇼팽 덕택이었다.

동시대 작곡가 슈만은 위풍당당한 폴로네즈보다 소박한 마주르카에서 폴란드인의 강력한 민족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러시아 차르가 이 음악 속에 위험한 적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즉각 금지시켰을 것이다. 쇼팽의 마주르카야말로 꽃밭에 숨겨둔 민족이란 이름의 대포와 같다."

쇼팽의 마지막 마주르카(f단조 Op.68-4)는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쿠야비아크 리듬을 담고 있다. 느린 걸음에 미묘한 반음계로 쓸쓸히 가라앉는다. 쇼팽이 세상을 떠난 후 악보를 건네받은 편집자는 이 마주르카를 '백조의 노래'라 호명했다.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최후의 영감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곡이다. 쇼팽은 평생에 걸쳐 18곡의 폴로네즈와 59곡의 마주르카를 작곡했다. 7살에 처음 작곡한 곡은 폴로네즈였고, 생애 마지막 순간엔 마주르카를 남겼으니 무언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고향을 사랑했으나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의 음악인생이 애틋한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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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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