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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범죄 경찰 내 수사 경시 분위기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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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성 전주환이 3년여 동안 자신이 괴롭히고 협박하며 따라다녔던 여성을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살해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여진이 그치지 않고 있다. 20대 남성이 게임을 하다 알게 된 여성의 아파트를 찾아가 여성과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2021년 3월, 서울 노원구), 50대 남성이 신변보호 대상자이던 여성을 찾아가 살해한 사건(2022년 2월, 서울 구로구) 등 여성 대상 스토킹 살인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지속적 괴롭힘을 경시하지 말고 피해자를 보호해 달라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또 다른 희생을 막지 못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두 차례나 가해자를 고소했으나 가해자는 구속되지 않았고, 가해자는 직장에서 직위해제됐는데도 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 동선을 추적한 허점이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찰, 가해자 분리 권한이 있는 사법부, 피해자가 일하는 직장이 좀더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스토킹, 디지털성범죄, 성폭력 등 여성 대상 폭력범죄에 대한 경찰 대응방향을 조율하는 조주은(55) 경찰청 여성청소년안전기획관을 지난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의 책임을 인정한 그는 여성폭력 범죄 수사를 여전히 경시하는 일부 경찰 간부들의 태도, 사건 최일선에 있는 경찰 수사관들의 성인지 감수성 격차 등을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해야 경찰이 여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내부자의 쓴소리다. 조 기획관은 가족 내 성평등 문제를 연구한 여성학자로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10년간 성착취 피해아동 보호, 디지털 성범죄 대응 등 여성ㆍ청소년 가족 정책의 입안을 뒷받침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2019년 12월 경찰청의 첫 여성안전기획관(경무관급)으로 임명됐다.
_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 가해자 전주환에 대해 경찰이 지난해 10월 첫 번째 불법촬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올해 1월 피해자가 스토킹처벌법으로 고소했을 때는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 잘못 아닌가.
“첫 번째 영장을 청구한 혐의인 불법촬영과 유포ㆍ협박 처벌 수준이 스토킹 범죄 처벌보다 더 높은데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 두 번째 고소는 스토킹 혐의가 추가됐지만 첫 번째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한 사유 이외에 새로운 구속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고심 끝에 신청하지 않은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아쉽다. 여성청소년안전기획관 업무 중 하나가 여성계, 법조계 등 전문가 그룹(여성청소년안전 정책자문단)을 만나 외부와 소통하는 일이다. 사건 이후 지난 17일 열린 회의에서 부장판사 출신의 한 위원은 첫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됐더라도 두 번째 고소 때는 사유가 달라졌으니 첫 번째 범행 내용을 포함해 경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_검찰과 법원의 실수는 없었나.
“검찰이 지난 8월 18일 피의자 전주환에게 9년형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선고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피의자가 다시 보복 등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었다. 검찰이 잠정조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판사도 선고기일을 앞두고 재범을 막기 위해 피의자를 구치소에 유치할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다. 영장을 기각한 법원은 이후 조건부 석방제 도입 등을 고민한 것으로 안다. 경찰과 검찰도 협의체를 만들어 보완점을 논의하고 있다.”
_지난 2월 구로동 사건에서는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가 피의자가 여성을 살해했다. 아무리 스토킹범죄 피의자라도 인신구속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원칙과 피해자 보호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범죄 현장에서 피해자의 위급한 상황, 처참한 상황, 흐트러진 상황을 직접 목격하는 사람은 경찰밖에 없다. 검찰과 법원은 서류로 판단할 뿐이다. 구속영장 신청이나 잠정조치를 신청하는 경찰은 인식구속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설득할 수 있게 아주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또한 경찰, 검찰 수사관들은 2차 피해 방지 예방 교육을 수시로 받는데 법원은 그렇지 않은 것도 문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도 등장하고 어떤 판결문은 논문 수준이다. 하지만 모두 판사들의 개별 역량에 달려 있다. 이를 표준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법적으로는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구속 사유(주거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주와 도망 우려) 이외에 재범 위험성이 있고 피해자에게 위해가 가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를 구속 필수요건이 되도록 법 개정도 필요하다.”
_언론보도를 보면 스토킹 피해 신고자가 수사하는 경찰로부터 2차 가해를 받은 사례가 여전히 소개된다. 경찰 조직은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스토킹 범죄는 일선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에서 맡고 있다. 전체 경찰 13만 명 중7,000명 정도가 담당하는데 사람마다 성인지 감수성 차이가 있을 것이다. 2015년에 여청수사팀을 신설하고 사회의 트렌드에 맞게 조직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사건이 폭증하면서 조사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민한 사건이 많아 ‘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라고 하소연하는 직원들도 많지만 경찰에 의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를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교육시키고 있다.”
_여성들이 경찰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걱정되는 건 일부 경찰 지휘부와 중간간부들의 마인드다. 스토킹 같은 여성대상 범죄는 최근 제정된 법에 따른 신종범죄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경찰의 역할을 형사ㆍ정보 같은 업무 위주로 생각하는 일부 간부들은 여성청소년 범죄 수사를 후순위로 놓고 보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직원들이 유관기관들과 협력해 피해자들에게 쌀 등 생필품을 전달하고 보호하러 가면 ‘경찰이 저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솔직히 좀 ‘꼰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_신당역 사건 이후 ‘여성혐오’ 범죄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특정 사건을 어떻게 언어로 정의하느냐가 사건 해결의 방향을 결정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여성학자이기는 하지만 법 집행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논쟁에 개입하는 건 신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제 신당역 사건현장을 찾아서 추모공간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물론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다,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되는 범죄)라고 쓰인 게시글도 있었다. 하지만 추모글 대부분은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안전한 사회가 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_그렇다면 이번 스토킹 살해가 단순한 보복범죄가 아니라 성별 기반 범죄라는 주장엔 동의하는가.
“제 답은 명확하다. 2018년 만들어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보면 여성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정폭력ㆍ성폭력ㆍ성매매ㆍ성희롱ㆍ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과 함께 스토킹(지속적 괴롭힘 행위)은 명백히 성별에 기반한 범죄다. 20% 정도 되는 남성 피해자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법적 정의로 보나 아직까지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보나 스토킹은 성별에 기반한 범죄라고 말할 수 있다.”
_여성에 대해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학습받고 이를 내면화한 세대들도 있다. 이들은 스토킹을 범죄로 보지 않으려 한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상의 여성폭력 7가지에 대해 각각 특별법이 만들어졌는데 이 중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마지막인 2021년에 제정됐다. 그러나 스토킹범죄 처벌법이 처음으로 발의된 건 15대 국회 때인 1999년이다. 당시 법안 검토 보고서에는 ‘전 사회적으로 스토킹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때부터도 분명히 스토킹을 사회문제로 여겼기 때문에 법안이 발의된 건 아닌가. 물론 가정폭력 같은 건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기도 하기에 누가 봐도 범죄다. 반면 스토킹은 어떻게 보면 마치 열렬한 구애처럼 보이거나 심지어 로맨틱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이렇게 편견에 노출될 수 있는 범죄라 특별법도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이다. 스토킹이 피해자 일상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조금 약하다는 점은 고민거리다.”
_스토킹범죄처벌법의 핵심은 무엇인가. 보완해야 할 점은 없나.
“피해자 보호가 법의 목적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핵심이다. 사실 입법과정에서 아쉬운 대목이 있었다. 2020년 정부안이 논의될 때 경찰은 스토킹과 같은 비정형적 위험상황 범죄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현장의 신속조치가 가능하도록 범죄 이전 위험상황에 대해 피해자 보호조치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 주자고 했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결정구조가 ‘경찰-검찰-법원’ 3단계라, 경찰에서 바로 법원에 신청할 수 있도록 2원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그 부분이 약화됐다. 물론 경찰이 스토킹 범죄 발생 이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도록 긴급응급조치(100m 이내 접근금지 등)를 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 건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결정구조는 여전히 3단계다. 긴급응급조치 위반 처벌은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1,000만 원 이하)를 내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긴급응급조치 위반율(12.9%)이 형사처벌(2년이하 징역)을 받는 잠정조치 위반율(8.7%)보다 높다.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했을 때 ‘돈으로 때우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_이번 사건 이후 경찰, 검찰, 법원 등에서 스토킹 관련 대책을 쏟아 내는데 경찰이 감당할 수 있을까.
“2020년 서울 양천경찰서 아동학대 사건(‘정인이 사건’) 대응 미숙으로 관리자 여러명이 징계를 받으면서 경찰 내에서 여성청소년 업무에 대한 기피 분위기가 생겼다. 그래서 이후 일선 여성청소년 간부들의 총경 승진비율도 높이고 일선 수사관들에게 교육기회도 부여해 겨우 붙잡아 놓았다. 신당역 사건이 9월 14일 발생했는데 열흘 사이에 경찰, 검찰, 법원에서 모두 대책을 냈다. 국회에도 관련 법안만 18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법안심사가 빨리 이뤄지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다. 가령 ‘반의사불법조항’은 폐지되겠지만 그럴 경우 사건화되는 일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오늘도 112에 스토킹 신고가 130건이 접수됐다.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법 개정에 따른 치안수요 증가에 맞춰 인력 충원이 될지 솔직히 걱정이 크다. 인력 지원이 안 되면 결국 법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겨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_여성 대상 성범죄 사건 때마다 남녀 대결 구도가 과열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왜 그런가.
“지난 대선을 보니 성별 대결 구도가 좀 드러나기는 했고 '성별 전쟁'처럼 보이는 경향들이 있다. 나는 ‘이대남, 이대녀’라는 표현으로 정치권과 언론이 조장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그런 세대는 없다’라는 책을 흥미 있게 읽었다. ‘MZ세대’를 단일한 집단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20,30대를 MZ세대로 동일한 집단으로 범주화하는 걸 불편해하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 이대남들이 동일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집단도 절대 아니다. 20대 남성도, 20대 여성도 같은 세대 내에서 학력, 계층, 소득 차이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그걸 묶어버리면서 정작 해결해야 할 미시적 문제들을 놓친다. 신당역 사건이 발생한 화장실에 가면 젊은 남성들이 와서 안타까워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_경찰 간부이지만 여성학자이기도 하다. 스토킹 살해 등 여성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이고 실질적 대책은 무언가.
“제 박사학위 논문은 우리나라가 속도경제 사회라는 게 중요한 주제다. 이런 사건이 나면 대책도 빨리 발표해야 하고 안 하면 또 늑장을 부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타까운 죽음이 다시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장기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법 개정 없이 가능한 단기과제, 3~4년 소요되는 중기과제, 5년 정도 걸리는 장기과제 등 단계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소통과 관계가 단절되면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상물, 게임에 몰입하는 개인들이 많아졌다. 폭력범죄가 늘어난 배경이다. 이런 자극적 미디어물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와 국가가 따듯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교육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듯한 교감과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그 하이라이트가 연인관계 아닌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관계를 단절할 수밖에 없을 때 어떻게 서로 간에 상처를 덜 받고 해결할 수 있는지,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단기적 법제도 보완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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