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서울말의 빈틈

입력
2022.09.30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조팝'도 조선어, '조밥'도 조선어… 다 같은 조선어에서 어느 하나를 취하고 어느 하나를 버린다는 것도 우스운 소리려니와 자기네 편의를 따라 이 말을 표준 삼느니 저 말을 표준 삼느니 하는 것도 우스운 소리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표준말 제정 당시 국어학자 홍기문이 쓴 글이다. 국어사전 편찬의 일환으로 조선어학회가 진행한 조선어 표준말 사정 작업은 당시 지식인 사이의 논쟁을 빚었다. '서울말로써 으뜸을 삼되, 가장 널리 쓰이고 어법에 맞는 시골말도 적당히 참작하여 취한' 표준말 사정 원칙은 많은 수의 지역어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어학회가 기관지 '한글'을 통해 7년여 동안 전개한 전 국민 '시골말 캐기' 운동도 유사한 결과로 이어진다. 전국에서 모아진 시골말은 선별 작업을 거친 후 '조선말큰사전'에 일부 표준어로 편입되었지만 대부분은 표제어에서 제외되거나 교정 대상인 비표준어로 처리되었다.

한편, 1937년 정태현 등 네 명의 조선 식물학자들도 오랜 채집과 조사를 거쳐 '조선식물향명집'을 발간하였다. '과거 수십 년간 조선 각지에서 실지 수집한 향명(鄕名)'을 우선적으로 기록한 것임을 밝힌 서두의 '사정 요지'는 서울말이 우선인 표준말 사정 원칙과는 달리 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식물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음을 알려 준다. 서울말에는 없는 '풀또기(함북), 개느삼(함남), 개쉬땅나무(평북), 수수꽃다리(황해), 멀꿀(제주), 꾸지뽕나무(전남)' 등 우리 땅 곳곳의 지역어가 이들 식물 이름의 주인이 된 것이다. 쑥부쟁이가 흐드러진 가을이다. 100년 전 함경남도에서 불리던 '쑥부쟁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역사의 실제를 느낀다.

최혜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