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귀여우면 귀여운 대로

입력
2022.09.28 21:00
25면

김성라 지음, '쓸쓸했다가 귀여웠다가'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왜 그래? 너답지 않게!"

"나다운 게 뭔데?"

드라마 속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생각이 잠깐 옆길로 샌다.

내가 너는 아니지만 너다운 게 뭔지 알고 있는 사람과 내가 나인데 나다운 게 뭔지 궁금한 사람의 대치라… 나는 왠지 후자를 응원하고 싶다. 나로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다운 나를 설명하는 것은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처럼 간단하지 않다. 간단하게 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 그것이 영원히 옳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곳에 뿌리 박은 나무처럼 진득하면 몰라도 우리는 인간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김성라 작가의 '쓸쓸했다가 귀여웠다가'는 섬과 육지를 오가는 일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기 있고 천진하게 쓰고 그린 그림 에세이다. 책은 섬과 육지를 오가며 바라본 풍경들, 소중한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 멀리 있어도 가까운 가족들,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쓸쓸하게 다가오는 사소한 일상 등,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나를 만들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육지를 떠나 제주에 살고 있는 나의 상황 때문인지, 책은 은근하면서 단단하게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특히 멀리서 보낸 안부문자에는 온통 끼니 걱정뿐인 엄마,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는 친구들과의 시시껄렁한 추억, 척박한 땅에서 기필코 자라는 잡초를 향한 미묘한 심경이 그렇다. 그 안에서 비롯된 쓸쓸하거나 귀여운 양면의 마음과 나란히 동행하며 나아가는 작가의 뒷모습은 나로 하여금 어렴풋한 안도감을 안겨준다. 그것은 5년 만인 이제서야 여행자 티를 벗고 거주자의 시선으로 제주를, 그리고 떠나온 육지를 돌아볼 마음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지 모른다.

5년 전 계획했던 제주에서의 내 모습은 낭만적이고 우아하기만 했다. 하지만 낭만과 우아의 동아줄은 진작에 놓쳐버렸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살던 곳과의 시공간적 거리감이 제대로 느껴질 때마다 살면서 가장 강렬한 쓸쓸함에 얻어맞곤 했다. 또한 새로운 환경 속 새로운 생활 전선에 시달리면서 많이 서툴고 나약한 나를 만났고 그로 인해 스스로에게 실망도 많이 했다. 마냥 파라다이스인 줄만 알았던 섬으로 도망치듯 날아왔지만 이제 알아버렸다. 쓸쓸함에서 달아나 귀여움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책은 이야기한다. 도망친 게 아니라고, 딱 좋은 곳이 생길 때까지 조금씩 움직이는 거라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쓸쓸하고 귀여운 양면의 마음과 나란히 동행하면 언젠가는 나다움이라는 꽃이 필 거라고.

나다움이 뭔지 헷갈리면 헷갈린 채로 계속 움직여 보라고 토닥거려 준 책 덕분에 조급하지 않다. 내가 만들고 싶던 나와 많이 다른 지금의 나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런 나를 만들고 있는 것들이 가득한 이 섬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화무쌍하지만 기본값은 아름다움인 이곳을 닮아가는 건 어떨까. 파도처럼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서.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귀여우면 귀여운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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