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못 말린 게 한"... 현대아울렛 화재 유족 애끊는 오열

입력
2022.09.27 20:00
수정
2022.09.27 23:14
6면
구독

7명 중 3명 28일 발인... 빈소 안 차린 곳도
일부 유족 "가족들에게 정보 공유 미흡해"

27일 대전 중구 충남대병원 장례식장에 전날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로 숨진 이모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이서현 기자

27일 대전 중구 충남대병원 장례식장에 전날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로 숨진 이모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이서현 기자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며 전기자격증 따서 이직했는데, 못 말린 게 한이 되네요.”

작은어머니는 조카의 죽음이 믿기지 않은 듯했다. 운동과 캠핑을 좋아하던 조카 이모(36)씨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로 까맣게 그을린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이씨는 이곳에서 전기관리 일을 하고 있었다. 27일 대전 중구 충남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마다 오열과 탄식이 새어나왔다.

결혼해도 같이 살자던 아들, 주검으로 돌아와

10년 전 병으로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이씨는 다정한 장남이었다. 작은어머니 최모(52)씨는 “조카 동생이 결혼해 아이가 태어나자 너무 잘해줘서 주변 가족들이 아이에게 ‘너 삼촌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라며 장난치곤 했다”고 회상했다. 결혼해도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는 말도 자주 했다고 한다.

이씨는 성실하게 일했다. 최씨는 “늘 아침 일찍 출근하고, 올해 추석 당일에도 좋아하던 갈비를 마다하고 일을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야간 근무가 끝나고 오전 9시면 퇴근하는데 집에는 보내줘야 할 것 아니냐”라며 “꽃도 피우지 못한 나이에 죽었지만 누구 하나 찾아와서 ‘책임지겠다. 잘못했다. 죄송하다’ 하는 사람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오전 유성선병원에 마련된 채모(33)씨 빈소에선 그의 아버지가 제단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채씨는 물류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그는 “아들이 마트, 물류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면서 “컴퓨터 그래픽 쪽으로 가는 게 꿈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충격에 빠진 어머니는 친척들의 걱정에도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채씨 작은어머니는 “조카 휴대폰이라도 온전하면 친구들에게 연락이라도 할 텐데, 다 불타 망가져 가족 말곤 부르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채씨 빈소에선 발인 날짜를 두고 소동을 빚기도 했다. 유족들은 화재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못 박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빈소 앞 스크린에는 ‘28일 발인’이라는 문구가 떴다. 채씨 아버지는 “전날만 해도 미정이었던 발인일이 어느 순간 바뀌어 있더라”며 답답해했다.

대전성모병원에 빈소를 차린 이모(57)씨 유족도 발인 날짜를 정하지 않았다. 각각 대전선병원과 근로복지공단 대전병원에 안치된 이모(71)씨와 김모(60)씨, 충남대병원에 있는 이씨는 28일 발인을 하기로 했다. 아직 빈소가 마련되지 않은 사망자도 두 명 있다.

유족들, 부실한 정보공유 성토

정지선(왼쪽)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7일 대전 유성구 용산동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현장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족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정지선(왼쪽)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7일 대전 유성구 용산동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현장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족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유족들은 사망자 신원조차 공유하지 않는 등 당국의 부실한 대처를 질타했다. 이날 화재 현장에서 채씨 작은아버지는 “전날 현장에 있다가 너무 답답해 유성선병원으로 갔더니 거기선 이미 조카가 죽은 것도, 인적사항도 다 알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최신식 소방시스템까지 갖춘 신축 건물에서 대규모 화재를 막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 유족은 “어디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지 유성구청을 포함해 5곳에 물어봤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현대 측 관계자들은 이날 화재 현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이번 사고로 희생되신 고인분들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사죄 말씀을 드린다”면서 “사고 수습과 유가족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전= 박지영 기자
대전= 이서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