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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시간도 저축하는 독일의 '근로시간 계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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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쯤, 미국의 대학에서 연구년으로 1년을 보낼 때다. 법적으로는 시간강사이지만, 나를 도와 줄 강의조교(T.A.)를 달라고 했다. 한 백인 대학원생이 배정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나에게 낯선 것은 그 조교의 근로조건이 1주일에 10시간이라는 것이었다.
매주 강의준비를 하면서 필요한 관련 참고문헌을 검색해 요약하는 것이 그 조교의 일이었다. 그 학생의 통학시간을 줄여준다는 생각에서 이메일로 지시를 하는 방식을 썼다. 그런데 몇 주 지나지 않아 나를 당황케 하는 메일이 왔다. 주 10시간이 거의 다 돼 가서 이제 이번 주는 작업을 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인이 영어 문헌검색을 하는데. 뭐 그리 시간이 많이 들었다는 말인가?', '내가 외국인이라서 꾀병을 부리는 것 아닐까?'
한국은 이와 사뭇 다르다. 내가 조교였을 과거에는 말할 것도 없었고, 요즘에도 우리 조교들은 일을 시키면 최선을 다한다. 교수나 조교나 실제로 '투입한 시간이 얼마인가'를 생각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혼자 하지 못하면 선후배가 도와줘서라도 가급적 끝내는 식이다.
여기서 한국과 서구 사이의 차이를 볼 수 있다. 한국은 '일(day)' 단위라고 한다면, 서구는 '시간(hour)' 단위다. 한국은 출퇴근 시간만 지켜서 일주일에 5일 회사에 9시 출근, 6시 퇴근하면 그만이다. 그 사이에 정말 업무를 했는지 아닌지 굳이 따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 주 52시간을 개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화두이다. 근로기준법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근로시간으로 규정하고, 초과하는 경우에도 주 52시간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한국의 근로문화는 다르다. 특히 사무실 근무는 이런 규정을 적용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 출근해서 신문 보고, 커피 마시며 잡담을 하다가, 뉴스 검색하고, 적당히 퇴근하는 날도 있다. 상사 눈치 보느라고 퇴근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 낮에 할 일을 밤에 하는 사람도 많다. 초과근무수당도 받는다.
미국 조교의 예와 같이 실제로 '시간(hour)' 근로 개념이 없는 우리나라에 서구의 맞지 않는 옷을 입힌 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그러니 시간제 노동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주 52시간 근로시간 개정 논의는 실제 생산성과는 관계가 없다. 시간당 임금을 설정하는 방식도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정도의 강도를 유지하는 작업량이 있어야 하고, 이를 모두 지킨다는 문화가 전제돼야 의미가 있게 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있다. 사람의 숙련도에 따라 실제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일이 많아 눈코 뜰 새 없는 날도 있지만, 한가한 날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일하는 시간만을 근로시간으로 하는 방법이 없을까. 독일과 같이 실제 일한 시간을 저축하듯이 하여 융통성 있게 쓰는 근로시간 계좌제도 하나의 답이다. 영국과 같이 최소 근로시간을 0으로 하고, 필요할 때만 일하는 '0시간 근로계약(zero-hours contracts)' 제도가 더 나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두커니 사무실 자리만 지키기보다는, 적정량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 근무시간을 고려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자리만 지키던 시간을 자기개발이나 사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실정에 맞는 제도 고안이 노사 모두를 만족시키고, 일자리 숫자도 늘릴 수 있는 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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