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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의 국장(國葬)을 반대하는 이유

입력
2022.09.24 04:40
수정
2022.09.24 08:09
13면

<72>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일본의 사생관(死生觀)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도쿄대 캠퍼스에 ‘국장 저지’라고 쓰인 시위용 간판이 등장했다. 사진은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과 준교수 이미숙 제공, 일러스트는 김일영

도쿄대 캠퍼스에 ‘국장 저지’라고 쓰인 시위용 간판이 등장했다. 사진은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과 준교수 이미숙 제공, 일러스트는 김일영

◇아베 전 총리와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國葬), 상반된 반응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을 반대하는 일본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이 치러진 영국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70여 년 동안 묵묵히 공직을 수행한 여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사에 대해서는 영국뿐 아니라 영연방 여러 나라의 시민들도 대체로 납득하는 분위기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반대하는 여론이 70%에 육박한다. 지식인들의 반대 서명에 이어 국장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이 정도면 일본 시민 사회의 반감이 상당하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어찌 되었든 아베 전 총리는 오랫동안 일본을 대표한 정치적 거물이다. 더구나 가두 연설 중에 총격을 받아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았다.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유명인을 향한 일본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의외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뭐니뭐니 해도 정치인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가 좋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국장의 법률적 근거가 모호하다든가, 장례식 비용이 많아서 국비 낭비라는 등 반대 명분도 있지만, 만약 시민들의 호감이 있었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장을 법률적으로 규정한 ‘국장령’이 폐지된 이후인 1967년에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장례를 국장으로 거행한 전례가 있다. 아베 전 총리의 경우와 동일하게 각료 회의라는 애매한 절차를 통해 국장이 결정되었고, 이때에도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다만, 패전 이후 일본 사회의 재건에 요시다 전 총리의 공헌이 크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던 만큼, 지금처럼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베 전 총리의 업적을 둘러싸고는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공적이 있었지만,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의 실효성을 둘러싸고는 논란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평화 헌법 개헌’을 주장하는 등 노골적으로 일본 사회의 정치적 우경화를 부채질했다는 비판이 크다. 특정 종교 세력과 결탁해 온 일본 정계의 악질적인 관행이 그의 불행한 죽음의 배경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 원수로서의 공도 있지만 과오도 명백한 그의 죽음을 영웅화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던 국장의 흑역사

일본 제국주의 시절, 국장이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던 역사가 있다. 예를 들어, 1909년 러시아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저격으로 사망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국장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성대했다고 전해진다. 이토는 일본 초대 총리이자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한국통감부의 초대 수장을 지낸, 당시 일본 정계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인 거물이었다. 그런 그가 한반도의 독립운동가에게 목숨을 잃었으니 일본 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국주의 정부는 그를 영웅화하고 죽음을 공적으로 애도함으로써 식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원동력으로 삼으려 했다. 이토의 시신은 하얼빈에서 도쿄의 장례식장까지 군함과 특별 열차 등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운반되었다. 화려한 운구 행렬을 보기 위해 가두로 나선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 광경이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국장을 기리는 기념 엽서도 수십 종 발행될 정도였으니, 그의 죽음은 온 나라가 함께 추모해야 마땅한 크나큰 비극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일제의 탐욕스러운 식민주의에 대한 반발이자 저항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그의 죽음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내국인에게 선전하기 위한 더없이 좋은 소재로 활용되었다. 패전 이후 새로운 일본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국장령’은 폐지되었다. 나라에 헌신한 인물의 죽음을 공적으로 애도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국가 통제를 강화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보자면, 일본 시민 사회가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해 유난히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의 죽음이 극우 사상을 선전하고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큰 것이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일본의 사생관(死生觀)

한편,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둘러싼 비판적인 분위기를 일본 문화의 독특한 사생관(死生觀)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일본 문화에서는 지극히 현세중심적인 관점에서 죽음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형태로 속세에 머무른다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 애니메이션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원령(怨霊、もののけ)’은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넋을 뜻하는데, 역병을 전파하거나 사고를 일으키는 등 인간을 괴롭히는 무섭고 성가신 존재다. 얄궂은 죽음을 맞이한 인간은 원령이 되어 인간을 괴롭히겠지만, 천수를 누리고 죽은 인간은 자연이나 만물에 깃든 형태로 세속 세계에 머문다. 말하자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상태로서 죽음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천국이나 극락 등 속세와는 동떨어진 사후 세계를 믿는 기독교나 대승 불교 등과는 전혀 궤가 다른 사고 방식이다. 또한, 자손을 남김으로써 사회적 생명을 이어 나가는 것을 중시하는 유교의 현실적인 사생관과도 거리가 있다.

사실 이런 사생관은 한국 문화에서도 아주 이질적이지는 않다. 억울하게 죽은 처녀 귀신이 원수를 갚으러 왔다는, ‘전설의 고향’ 풍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낯설지만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치부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런 사고 방식이 신앙 체계인 신도(神道)로 제도화했고,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문화적 사고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일본에는 집 한구석에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는 ‘불단(仏壇)’을 설치한 가정집이 드물지 않다. 한국에서는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잠깐 왔다 가신다는 선조를 위해 명절날에 제사상을 차린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늘 집에 함께 계시는 조상님을 위해 매일 아침 종을 울리고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존경하는 인물의 생가를 찾기보다는 무덤을 참배하는 것을 즐긴다. 좋아하는 문학가나 음악가의 생가를 방문하는 한국의 팬 문화와는 대조적인 일면이다. 죽어도 속세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는 독특한 사생관이, 일상생활과 지극히 가까운 맥락에 죽음을 자리매김하는 문화적 풍습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일본의 정치가들이 ‘우익의 충혼’을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를 매년 참배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일본의 사생관에 비추어볼 때에 신사 참배는, 저 세상의 혼령을 단순히 추모한다기보다는, 지금 이 세상에 공존하는 혼령을 일깨우고 위로하는 현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행위는 그곳에 합사된 전쟁범죄자들의 호전적인 신념을 부활시키겠다는 공공연한 선전포고라고도 읽혀지는 것이다. 죽음을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본 문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베 전 총리의 국장도 상당히 위태로운 시도로 보인다. 극우 정치인의 죽음을 공적으로 추도하는 행위가 일본 사회의 극우적인 정치 사상에 불사(不死)의 행동력을 부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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