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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추락, 그저 바라만 보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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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급등세 진정, 20원 올라.'
원·달러 환율이 하루 20원이나 뛰었는데 급등세 진정이라니. 그 전엔 도대체 얼마큼 널뛰기를 했기에 이런 제목을 신문에 쓸 수 있나 확인해 봤다. 하루에만 환율이 133원 폭등했고, 40~50원씩 뛰는 건 예사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우리 실물 경제에 파고들고 있다는 공포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위협했던 2008년 10월의 일이다.
2008년까지 갈 것도 없다. 2020년 3월 19일 원·달러 환율은 하루 만에 40원 수직 점프하며 1,300원을 위협했다. 코로나19 공포에 질린 외국인들이 대거 달러 확보에 나서면서 코스피가 8% 넘게 수직 낙하한 날이다. 그 아찔한 변동폭을 지켜봤던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당시의 기분을 '무력감'에 빗댔다.
위기에 맥없이 추락하는 원화의 무력감이 정확히 2년 반 만에 되살아났다. 미국의 긴축 공포가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한 결과 달러당 원홧값이 1,400원에 바짝 다가서 있다. 원·달러 환율은 연초보다 16% 넘게 올랐다. 고물가에 신음하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면서 달러 초강세가 나타난 탓이다.
정부는 "세계적인 강달러 현상에 원화뿐 아니라 주요국 통화 모두 달러 대비 약세"라고 말하고 있다. 1,400원 저지를 위해 외환당국도 구두 및 실탄 개입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게 속내다. 그래서일까. 환율이 우리 경제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건 과거 두 차례 위기 때와 다르지 않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정부 설명에 무력감은 배가 된다.
시장의 시선은 한국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올 연말 미국 기준금리가 가뿐하게 4%를 넘길 거란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 미국과의 금리 역전폭이 커질수록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환율은 고점을 더 높일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가 물가 안정에 사활을 건 만큼, 수입 물가를 자극하는 고환율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준금리를 끌어올릴 명분이다. 올 10월 한은 역사상 두 번째 빅스텝(0.5%포인트 인상) 전망이 조심스레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하지만 1,800조가 넘는 가계부채와 소비 위축 우려는 기준금리 결정의 길목마다 한은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미 금리 인상에 휘청대고 지갑을 닫는 서민과 취약계층이 적지 않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한은이 미국처럼 과감하게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금리 역전과 원화 약세를 감내할 수밖에 없을 거란 예상은 외환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이후 연말까지 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올리겠단 뜻을 내비쳤다. 한은이 사실상 한미 금리 차를 용인하겠단 신호를 보낸 만큼, 이를 기회로 삼은 환투기 세력이 최근의 환율 상승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강달러 현상을 두고 "한 세대에 있을까 말까 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라구람 라잔 미국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WSJ에 "강달러 현상은 이제 시작"이란 더 지독한 전망을 내놨다. 고금리 시대가 지속되고 그에 따른 경제 취약성은 더 커질 거란 설명이다. 이미 곤두박질친 원화의 운명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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