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왜 북한의 'ㅂ'자도 안 꺼냈을까

입력
2022.09.21 11:20
수정
2022.09.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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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유엔총회 기조연설, '북한' 언급 없어
'담대한 구상' 제안 이후 北 단칼에 거절
"전략적 침묵" 무게... "평화 비전 제시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서며 유엔 데뷔 무대를 치렀다. '자유와 연대-전환기 해법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11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 연대, 책임 등을 키워드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연설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연설 시간부터 길지 않았다. 통상 각국 정상에게 약 15분의 기조연설 시간이 할당되는 걸 감안하면, 주어진 시간을 다 쓰지 않았다. 대신 본인이 정치 입문 시절부터 늘 강조해온 자유와 연대 이슈에 집중했다. 자유라는 단어만 21번, 연대는 8번, 지원과 책임은 각각 7번이 나왔다.

의아한 건, 북한 이슈를 단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안보 위협을 거론하며 북한 이슈를 상기시키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북한을 콕 집어서 얘기한 건 아니다.

대한민국 정상이 한반도 이슈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유엔 무대에서 북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5년 내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 프로세스'를 언급하며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 이슈를 각인시킨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유엔 무대 데뷔에 앞서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집착해왔다"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터라, '윤석열표 대북정책'의 복안이 무엇인지 궁금증과 기대감은 더 커졌던 상황이다.

그럼에도 '함구'했다. 왜 윤 대통령은 북한의 '북'자도 꺼내지 않았을까.


①괜히 또 북한 자극할라... "전략적 침묵" 가능성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가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 붕괴라며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했다.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가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 붕괴라며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여야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침묵'이 계산된 전략이었을 수 있다고 봤다.
북한 이슈는 상대가 있는 정책인 만큼, 북한의 호응을 봐가면서 숨고르기에 나서겠다는 판단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비핵화 로드맵으로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일 경우 경제적 지원에 돌입하고,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행할 경우 단계별로 정치·군사적 안전보장 방안을 제시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담화)이라며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단칼에 거절한 상태다. 이에 더해 북한은 추석 연휴 직전 선제 핵 공격도 가능하다는 '핵무력 정책 법령'까지 채택해 압박 수위를 높이는 형국이다.

북한 전문가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남측의 대북 제안에 대응할 여건이 안 돼 있고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굳이 유엔총회장에서 말할 필요는 없다는 전술적 계산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같은 라디오에 출연해 "그냥 북한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게 전략적 판단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②담대한 구상의 자가당착?... "다음 스텝 제시해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서로를 안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서로를 안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는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 교수는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를 부정해버린 상황에서 유엔 가서 할 말이 있었겠나. '담대한 구상'이 지난 정부의 정책과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말이다"라며 "또 전임 정부가 북한에 집착해서 문제라고 해놓고 북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안 맞는 것 같고 하다 보니 준비과정에서 삭제된 것 아닌가 본다"고도 분석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대화의 모멘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조언들이 나온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이번에는 여러 이유로 전략적 판단을 했더라도, (윤석열 정부가) 그 다음 스텝이 무엇인가라는 것은 알고 가야 되는데 그게 안 보여 걱정"이라고 했다.

김종대 교수도 "북한에 뺨 맞았다고 해서, 문제를 자꾸 언급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런 침묵 자체가) 자기중심적이다. (북한의 호응이 없을수록) 인내하고 더 넓은 평화의 비전으로 나갔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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