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껴안고 세상과 맞서싸우기

입력
2022.09.21 21:00

김정희원 지음, '공정 이후의 세계'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재난, 위기, 구조적 폭력, 사회의 실패를 지속적으로 목도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하고 다양한 급진적 자기돌봄의 양식을 발명해야 한다."

5년 전, 전통시장 한구석에 책방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도 이 같은 마음이었다. 아마 그때 이 책을 만났다면 지금까지 사전처럼 가지고 다녔을지 모른다. 책 '공정 이후의 세계'는 책방을 통해 다른 삶을 꿈꾸는 내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그동안 원하든 원치 않든 다른 이들과 경쟁하는 일이 많았다. 경쟁에 익숙하지 않으면 마치 낙오자로 보는 시선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경쟁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단기계약직,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등등의 직업을 거치고, 낙방의 고배를 겪었을 때는 고독이 무엇인지 느꼈다. 결국 나의 문제, 결국 나의 능력, 결국 부족한 것은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실패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고독은 강렬한 경험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부끄러웠고 점점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책방을 낸 이후의 시간은 달랐다. 책과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마치 '너만의 문제, 너의 책임이 아냐'라고 말하는 것 같은 책들과 그런 책을 만나려고 오는 사람들 속에서 내 삶을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아닌 '공존'의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공정 이후의 세계'는 삶을 다르게 해석하고 싶을 때, 만나면 큰 힘이 되는 책이다.

"모두의 생명을 구하는 자기돌봄은 결국 연대와 공동체를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나 자신과의 연대, 소수자와의 연대, 상처 입은 자들과의 연대, 곁에 있는 나의 공동체와의 연대를 통해 급진적 자기돌봄을 서로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경쟁과 불공정이라는 불구덩이에 그저 나 자신을 내던질 것이 아니라, 다소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힘. 이 책은 나 자신과 나의 공동체를 돌보는 윤리, '연대'를 고민하기를 제안한다.

나 또한 공정 이후의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건 나를 품어주는 공동체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귀여워하고 때론 안쓰러워해야 한다.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쑥스럽게 손을 내밀어 서로를 돌보려 할 때 비로소 가능할 테니. 사랑하기가 잘 안된다면 경쟁이 심어놓은 성공과 구원의 환상으로 상처 입고 각박해진 나의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그렇기에 불공정한 사회가 숨겨놓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이 세상은 앞으로도 계속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게 다일지도 모른다.


책방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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