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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 쉬는 건 권리 아닌 의무

입력
2022.09.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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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 '2022 대선유권자 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실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규탄하며 "정부가 시민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5일 '2022 대선유권자 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실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규탄하며 "정부가 시민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최근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기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자가 격리에 들어가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얼마 후 또 다른 기자가 몸이 아파 병가를 내게 됐는데, 그 역시 똑같은 말을 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병이 생기는 건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건 본인일 텐데 왜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

그들의 '미안함'은 아파서 쉬는 동안 동료들이 늘어난 업무를 떠안아야 하는 점,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몇 해 전 중환자실 신세를 졌을 때 머릿속엔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어쩌나'라는 걱정이 먼저였다.

몸이 아픈 것보다 출근과 일을 우선시하는 문화는 성실함에 대한 평판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회 초년병 시절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선배가 목발을 짚은 채 회사에 나와 '출근 눈도장'을 찍고 난 후 병원에 입원하는 모습을 봤다. 그 후 그 선배는 회사에서 성실함의 대명사로,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로 회자됐다.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란 말이 있다. 질병이나 극심한 피로·스트레스로 건강의 문제가 있음에도 출근하는 행위, 그로 인해 생산성이 저하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한국은 심각한 프리젠티즘의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병가 일수는 1.2일이다. 오스트리아(17.1일) 독일(11.7일) 프랑스(9.2일) 미국(7.4일)에 비해 매우 짧다. 한국 근로자들은 어떤 질병과 스트레스에도 끄떡없는 '철인'이거나, 아픈데도 쉬지 못하고 억지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덴 여러 이유가 있다. 한국노총 조사 결과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상사·동료의 눈치 등 회사 분위기 때문에', '대신 일할 사람이 없어서', '인사고과에 영향을 줄까봐', '급여를 못 받아서' 쉬지 못한다고 했다.

아플 때 쉬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적 인식만큼이나 제도도 미흡하다.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기업 중 취업규칙에 병가가 규정된 곳은 42%이고, 유급병가를 시행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근로자들이 생계와 고용 유지를 위해 아파도 출근해야 한다.

프리젠티즘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뒤늦게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한 건 코로나19 덕분이다. 팬데믹 시대의 프리젠티즘은 집단감염으로 이어져 공동체의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에, 아픈 사람을 쉬게 하고 대신 생계비를 지원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 결과 근로자가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소득의 일부 손실을 보전해주는 '상병수당' 제도가 도입돼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프리젠티즘은 기업에도 손해다. 근로자의 컨디션이 나쁘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다. 건강 악화로 인한 조기 퇴직·이직은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아픈 근로자들이 억지로 출근해 발생하는 생산성 손실과 사회적 비용 규모는 미국에서만 연간 200조 원이 넘고, 이는 결근으로 인한 손실의 3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근로자는 '아프면 쉴 권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공동체의 건강과 기업의 생산성까지 고려한다면, 아픈 근로자에겐 쉴 권리가 아닌, 쉬어야 하는 의무가 적용돼야 한다.

한준규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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