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능선 너른 들판... 하늘 맞닿은 강과 바다까지 품은 산

입력
2022.09.21 04:30
<173> 아산 염치읍 영인산과 현충사, 곡교천 은행나무길

아산 영인산 연화봉 꼭대기에 2개의 거대한 탑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 깃대봉과 신선봉에서는 평택 당진과 서해까지 일대가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높이에 비해 큰 산이다.

평택 남쪽에서 아산만방조제를 건너면 충남 아산이고, 서해대교를 지나면 당진이다. 이 부근 아산과 당진 사이는 삽교천방조제로 연결된다. 어디까지나 도로를 기준으로 한 구분이다. 제방이나 교량이 많다는 건 그만큼 물길이 여러 갈래라는 뜻이다. 아산과 평택은 안성천으로 갈라지고, 아산과 당진 사이에는 삽교천이 흐른다. 삽교천 옆으로는 곡교천이 실핏줄처럼 들판을 적신다. 이런 지형을 한꺼번에 살필 수 있는 곳이 바로 영인산(363m)이다.


영인산의 진면목, 올라봐야 안다

영인산은 아산시 영인면과 염치읍에 걸쳐 있다. 염치는 ‘소금고개’라는 뜻이다. 정상 서남쪽 골짜기의 세심사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지만, 대개는 영인산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한다. 휴양림 입장료와 주차료(각 2,000원)를 내면 비교적 편안한 길로 정상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싱거워 등산하는 맛이 없다 싶으면 휴양림 약 2㎞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으면 된다.

영인산(靈仁山)은 신령스럽고 영험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근거는 빈약하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인근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 정도 얘기는 웬만한 마을의 당집이나 서낭당에 흔하다. 산 아래서 보는 풍모도 신령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높지도 않을뿐더러 상투적으로 묘사하는 기암괴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영인산의 진면목은 안으로 들어가야 제대로 드러난다. 자연휴양림부터 시작해 정상에 이르기까지 수목원과 산림박물관, 상징탑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자연만으로는 부족하니 여러 볼거리를 더한 격이다.

영인산자연휴양림에서 조금만 걸으면 아늑한 산중 습지가 나타난다.


산중 습지인 영인산수목원에는 잔디광장이 조성돼 있다. 가족 여행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자연휴양림에서 낮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뜻밖의 풍경이 나타난다. 작은 연못을 끼고 있는 산중 습지에 넓은 잔디밭이 조성돼 있다. 영인산수목원이다. 목각 부엉이가 쉬고 있는 탐방로 주변에 이제 막 억새가 피어나고, 철을 잊은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달콤한 향기를 뿌리고 있다. 공원 뒤편 상투봉 왼편으로 아산 시내가 손에 잡힐 듯하고, 가을이 익어가는 들판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휴양림에서 이곳까지는 잘 포장된 임도여서 유모차를 끌고 소풍을 오는 가족 여행객이 제법 많다.

산중 습지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 역시 임도로 연결되는데, 최근 산비탈을 따라 덱을 설치했다. 임도에 비해 거리가 짧고, 계단 없는 완만한 경사라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약 770m 무장애 덱이 끝나는 지점에 산림박물관이 있다.

영인산의 산림 역시 풍성한 편이 아니다. 탐방로 주변에 키 큰 참나무가 더러 있지만, 울창한 숲길이라 하기 힘들다. 이런 곳에 굳이 산림박물관이 필요할까 싶은데, 전시 내용은 의외로 알차다.

영인산수목원에서 산림박물관까지는 계단 없는 무장애 덱이 놓여 있다.


영인산 산림박물관 로비에 강풍에 쓰러진 청댕이고개 느티나무가 전시돼 있다.


영인산 중턱의 산림박물관 뒤로 아산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입구에 거대한 느티나무 밑동이 뉘여 있다. 일명 청댕이고개 느티나무다. 아산 시내에서 옛 온양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길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던 나무가 2015년 강풍에 쓰러져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를 시작으로 박물관은 아산과 천안 지역의 이름난 나무에 얽힌 이야기, 규화목을 비롯한 희귀 광물과 조류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별관은 숲의 소리와 향기 등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게 꾸몄다. 이를테면 실제 영인산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시설이다. 무엇보다 옥상 전망대 풍광이 일품이다. 습지 정원에서 귀퉁이만 보이던 곡교천 주변 들판이 멀리 당진까지 시원하게 트인다.

산림박물관을 지나면 연화봉, 깃대봉을 거쳐 정상인 신선봉까지 등산로가 이어진다. 연화봉(330m)을 오르는 구간이 조금 가파르지만 전체 길이가 1㎞ 남짓해 등산이라 할 수준은 못 된다. 연화봉 꼭대기에는 또 하나의 구조물이 우뚝 서 있다. 이름도 거창한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다.

높이 30m, 둘레 26m, 가운데가 마름모꼴로 돌출된 석탑 2기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설명을 보니 하부는 빈번한 외침과 고난으로 점철된 민족의 과거, 중간은 생명과 화합의 결정체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상부는 세계를 향한 조국의 영광과 미래를 상징한다고 해석해 놓았다. 작품을 보는 눈이 부족해서일까, ‘산꼭대기에 굳이 왜’라는 의문을 품고 바로 옆 깃대봉과 신성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영인산 연화봉에 세워진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


영인산 깃대봉에서 평택 방향으로 드넓은 평야와 안성천(아산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영인산 정상인 신선봉에 주한미군이 사용하던 막사와 초소가 남아 있다.


영인산 깃대봉과 신선봉 사이는 좁은 콘크리트 계단으로 이어진다. 이곳을 지키던 군인들의 이동로였다.


두 봉우리는 연화봉보다 불과 30m 정도 높은데, 발 아래 펼쳐지는 풍광은 완전히 딴판이다. 왼쪽 곡교천과 삽교천 물길 너머로 예당평야의 너른 들판이, 정면으로는 평택과 경계를 이루는 안성천 물길과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높지 않지만 큰 산이다.

보통은 높은 산줄기 사이에 농촌 마을과 들녘이 자리하기 마련이지만, 이곳에선 나지막한 산과 마을이 넓은 들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삽교천과 안성천이 합류한 물길은 폭이 한없이 넓어져 아산만을 통해 서해로 흐른다. 밀물 때마다 내륙 깊숙이 밀려드는 바닷물은 새 문명의 자양분으로 일대를 푹신하게 적셨다. 서역에서 비롯한 불교와 천주학이 우리 땅에 깊이 뿌리내린 곳 중 하나가 바로 삽교천 주변 내포지역이다.

아산만 위로는 서해대교가 아른거린다. 낮은 산 능선과 너른 들판도 강과 바다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곳으로 희미하게 사라진다. 수평선인지 지평선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기대했던 멋진 노을을 보지는 못했지만, 산하의 또 다른 풍경을 본 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은 산행이었다.

영인산 정상인 신선봉 꼭대기에 배 모양의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당진 평택과 아산만까지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영인산 꼭대기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와 바다가 만나는 아산만 물길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영인산 정상에서 본 당진 방향 평야. 가운데가 삽교천, 아래쪽이 곡교천이다.


일대의 움직임을 한눈에 포착할 수 있으니 영인산이 군사상 요충이었던 건 당연지사다. 깃대봉 정상에는 한국전쟁 이후 설치한 대공포 시설이 있었다. 깃대봉과 신선봉은 좁은 콘크리트 계단으로 이어진다. 역시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지금도 초소와 막사, 나무전봇대가 남아 있다.

영인산 3개 봉우리 주변에는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기록에 의하면 높이 3m, 폭 2~3m, 둘레 1,000m 규모의 큰 성으로 백제 초기에 처음 쌓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내포 관문의 핵심 방어기지였음을 상기해 보면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 전혀 생뚱맞은 구조물은 아니다.

‘시련과 영광’의 현충사, 늦가을 기다리는 곡교천

사실 아산에서 ‘민족의 시련과 영광’이라는 문구가 가장 어울리는 곳은 염치읍 백암리의 현충사다. 숙종이 재위 32년(1706) 처음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에 직접 ‘현충사’라는 현판을 내렸다.

이순신의 생애와 마찬가지로 현충사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원이 함께 있어서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으나, 1906년 을사늑약에 분노한 지역 유림들이 현충사 유허비를 건립하며 부활의 싹을 틔웠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이충무공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처하자, 민족 지사들이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고 성금을 모아 현충사를 중건하게 된다.

1966년 성역화 사업으로 세운 현충사.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이 걸려 있다.


구 현충사 건물에는 숙종이 내린 한자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1966년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해 새 현충사를 지었다. 지금 현충사에는 박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의 현충사와 숙종이 내린 한자 현판의 현충사 두 개가 공존한다. 현충사 입구의 기념관에 이러한 사연을 자세히 전시해 놓았다.

현충사에는 2개의 사당과 함께, 덕수 이씨 집안의 정려(충신, 효자, 열녀에게 임금이 내린 현판을 걸어 놓는 문), 이순신이 혼인을 한 21세부터 무과에 급제한 32세까지 살던 고택, 말타기와 활쏘기 연습을 하던 터 등이 있다. 이순신은 한양 건천동(현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나 어릴 때 외가인 아산에서 자랐고,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무남독녀와 결혼한 후 처가에서 지냈다. 현충사 안 고택이 바로 그 집이다.

정갈하게 가꾼 현충사 중앙부에 커다란 반송 한 그루가 멋진 수형을 뽐내고 있다.


현충사 고택 옆에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훈련하던 활터가 남아 있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는 현충사의 내력과 임진왜란 전쟁 상황, 난중일기 등이 전시돼 있다.

충무공의 셋째 아들 이면의 묘소와 기념관까지 둘러보려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린다. 경내는 울창한 숲이자 공원이다. 특히 활터 옆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한 몸처럼 멋진 수형을 자랑한다. 1975년 염티초등학교에서 이식한 반송이 중앙에 운치 있게 자리 잡았고, 성역화 사업 당시 전국 지자체에서 기증한 조경수도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순신의 묘는 현충사에서 약 9㎞ 떨어진 음봉면 어라산 자락에 있다. 12월까지 묘역을 정비 중이어서 현재는 참배할 수 없는 상태다.

현충사 입구 곡교천변에 백일홍과 황화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다.


곡교천 은행나무길. 수령 60년 가까이 된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2km 넘게 이어진다.


10월 말부터 노랗게 물드는 곡교천 은행나무 단풍은 11월 초 절정을 맞는다. 사진은 2017년 11월 10일 풍경.

현충사에서 나오면 곡교천 제방을 따라 2.1㎞ 구간에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조성돼 있다. 1973년 당시 10여 년생 은행나무가 지금은 아산의 상징으로 성장했다. 아직은 잎이 푸르지만 11월 초면 샛노랗게 물들어 절정의 가을 서정을 선사한다. 현재는 제방 아래 둔치에 백일홍과 황화코스코스가 활짝 피어 있다.

아산=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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