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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해법은 '식민불법-배상포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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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조약은 무효라는 하루키 해석
대위변제 해법은 성공장담 어려워
강제집행 인정하는 '플랜B' 준비해야
지난주 동북아역사재단(이영호 이사장)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는 "1910년 병합조약의 조인은 조약체결의 자격이 없는 자들끼리 맺은 연극이었다"며 "병합이 한국 측의 희망과 요청에 따르는 형식을 빌렸으나 본질을 보면 조약으로서는 무효(null and void)이고 선전용 문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한국 병탄은 '병합조약'이 아니라 일본군의 힘을 빌려 천황의 칙서로 선언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제2조의 구조약 무효 조항에서 일본이 '이미(already)'에 대한 시점을 1948년 한국 정부 수립 후로 해석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있으나 '이미'라는 부사의 삽입에 상관없이 "이 해석은 본질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병합조약이 기만과 강박에 의해 이뤄진 것이므로 무효이고 불법이라는 해석은 기존에도 논의되어 왔지만, 일본 정부가 시점에 상관없이 병합조약이 무효라고 합의한 점을 들어 일본이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 것은 매우 예리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배가 불법이고 무효에 기반한 것이라는 주장은 역사학 연구의 결과이지만, 그에 기반하여 일본이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이 일본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는 전략 및 정책론의 문제이다. 한국 정부는 불법 무효론의 입장에 서서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에서 무상, 유상의 자금을 받았지만, 정부는 이 자금의 명목을 응당 받아야 할 보상 및 배상으로 설명했다. 역대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에 대해 도의적 사죄론을 표명해왔다. 즉, 호소카와 모리히로, 무라야마 도미이치, 간 나오토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통절한 사과, 반성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반발한 우파세력은 '망언'을 해대며 반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지금도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도의적 사죄론을 뒤엎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2005년 '민관위원회'를 통해 식민지 보상 문제와 관련한 입장 정리를 시도한 바 있다. 위안부, 원폭 피해자, 사할린 동포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남아 있고 강제동원 등 기타 사안에 대해서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2011년 위안부 문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부작위 위헌 판결'과 2012년과 2018년에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나왔다. 이후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결과 이행과정을 이유로 들며 보상, 배상에 관한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해 왔다.
현재 우리 정부는 징용 피해자와 가해 기업 및 일본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기금'이라는 그릇을 만들어 '대위변제'에 의한 해법을 추구하고자 노력 중이다(플랜A). 하지만 이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합의 도달이 어렵고 정부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금화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의 판결로 현금화가 이뤄지더라도 일본과 극단적 대립을 막기 위한 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플래 B)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현금화로 일본 기업의 재정적 손실이 발생할 경우 '기금'이나 '입법'을 통해 이를 보전해 줄 것을 약속하면 될 것이다. 어느 경우든 우리 정부가 식민지배에 관련하여 더 이상의 대일 배상, 보상을 추궁하지 않겠다는 전제에 서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은 대일 전쟁 배상을 일체 포기하고 '이덕보원'을 내세웠다. 차제에 우리 정부는 식민지배 관련 보상, 배상을 영구 포기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공식 표명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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