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승리에도 쿠르드와 연정에 실패한 '알 사이룬' 정파
같은 종파여도 친 이란·반 이란으로 대립 중인 시아파
시아파 원로, 알리 시스타니 덕분에 유혈 충돌만은 모면
지난달 29일 이라크 최대 정파 알 사이룬의 지도자인 시아파 정치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자 알 사드르 추종자들은 그린존으로 몰려들어 대통령궁까지 침입했다. 이라크 군경이 진압에 나서 36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이라크의 정치적 혼돈은 심화되고 있다.
알 사이룬 정파는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329석 가운데 73석을 확보해 이라크 최대 정치 세력에 등극했지만, 내각 구성을 위해서 다른 정파와의 연합이 필요했다. 알 사드르는 무함마드 알 할부시 의회 의장과 쿠르드 민주당을 이끄는 마수드 바르자니와의 3자 연합을 모색했다. 하지만, 알 사드르의 종파주의를 초월한 정치적 연합은 실현되지 못했다. 알 사드르에 반대하는 같은 시아파 정치인들의 은밀한 방해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친 이란 성향의 기득권 시아파 정치 세력들은 마수드 바르자니의 쿠르드 민주당이 사드르와 협력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올해 2월 이라크 연방법원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자치정부가 석유와 가스 자원을 독자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한 2007년의 법령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쿠르드 자치정부가 관할해 온 석유 판매권을 바그다드의 연방정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연방법원 판결은 마수드 바르자니와 알 사드르의 공조를 저지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알 사드르가 연립 내각 구성에 실패하고 나서 6월 알 사이룬 정파 소속 의원 73명 전원은 사의를 표명했다. 알 사이룬 정파 지지자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고, 알 사드르에 반대하는 국민들과 충돌했다. 이러한 총체적 혼돈 상황에서 최대 친 이란 시아파 정파 조직 연합 세력은 알 사드르의 정적인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와 가까운 인사를 총리에 지명한다. 친 이란 성향으로 알 사드르에 대적하는 인물이 총리에 지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족주의 성향의 시아파들은 격분했고, 친 이란 성향의 시아파들과의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갔다.
현재 이라크 시아파는 외세의 영향력 확대를 거부하는 알 사드르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성향의 시아파와 이란의 후원을 받는 친 이란 성향의 시아파로 양분된 상황이다. 각자 자신들이 이라크 전체 시아파를 대변하고 있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분열된 지지자들은 제도화된 법의 테두리가 아니라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내고 있다. 따라서 유혈 충돌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알 사드르의 정계은퇴 선언으로 가중된 시아파 정치 세력 간 충돌이 내전으로까지 번지지 않은 것이다. 이라크 시아파의 최고지도자 알리 시스타니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92세의 고령인 알리 시스타니는 여전히 이라크 시아파 정치지형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작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이라크를 방문했을 당시 직접 나자프로 가서 알리 시스타니와 만난 것은 그의 정치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현재 알리 시스타니는 민족주의와 친 이란 성향의 시아파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고 있지 않다. 다만, 최근 폭력 사태가 가중되자 알 사드르에게 폭력적 시위를 중단하기 위한 조치에 나서 줄 것을 비공식 채널을 통해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알 사드르는 자칫 폭력 사태가 심화될 경우 알리 시스타니가 자신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할 것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알리 시스타니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알 사드르의 추종자들이 폭력 시위를 자제하도록 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라크 정치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의 종파 간 대립은 물론 같은 시아파 내부의 갈등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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