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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신발' 논쟁, 뭣이 중할까...정답은 없고 해석은 열려 있다

입력
2022.09.20 04:30
16면

<5> 무제의 맛, 무한한 상상의 세계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오래전 7살이었던 딸 아이와 함께 김환기의 작품 전시회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아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모습을 신기해하면서 작품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한참을 제목 한 번, 그림 한 번 보던 아이는 '무제'라는 작품 앞에서 멈추어 또 한참을 바라보았다.

“엄마, 무제가 뭐야?”
“어, 그건 ‘제목 없음’이라는 뜻이야.”
“왜 제목이 없어? 나는 새들이 막 같이 날아가는 거 같은데. 맞나?”
“글쎄, 맞을걸? 정답은 없거든.”
“정답이 없어? 왜 정답이 없는데?”

나는 잠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푸른 점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이 그림에 대해, 이것이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한국 추상화의 거장 김환기가 말년에 그린 작품이며,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의 연작 시리즈 중 하나라고 이야기해 준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 되지 못할 것이다.

김환기의 '10-VII-70 #185'. 코튼에 유채, 1970년작.

김환기의 '10-VII-70 #185'. 코튼에 유채, 1970년작.


제목을 붙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어린아이에게만 현대미술이 어렵고 낯선 것이 아니다. 성인에게도 미술관과 전시장에 걸려 있는 그림은 때로는 어렵고 난해하다. 모더니즘, 현대미술 등의 타이틀이 붙은 미술 전시회를 둘러보다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 오리무중인 관람자 앞에 제목이라도 한 줄 붙여주면 좋으련만, 작가는 그마저 '불친절하게도' 무제라는 제목을 걸어 두기도 한다. '이름'이 없는 대상과 마주한 관람자들은 풀어야 하는 숙제를 받은 기분마저 든다. 언제부터 그림은 어려워졌을까? 고쳐 말하자면, 시각예술 작품들은 언제부터 풀어야 하는 숙제가 되었을까 하는 질문과 같다.

19세기 이전의 예술 작품들은 제목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그림이 가졌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현실 또는 사물의 ‘재현’이었으며, 작품 속의 선명한 주제 또는 대상이 바로 제목이 됐다. 당시 그림은 예술성의 표출이기 이전에 현장 기록을 위한 사진의 역할이었다. 국가나 기관, 또는 개인 후원자들의 요청에 따라 화가, 조각가들이 작품을 만들었던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때의 화가와 조각가들은 예술가라기보다는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었다. 창작자가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때로는 화상이 작품들을 구분하여 보관하기 위해 번호를 붙이거나 별명을 붙인 것에서 명화의 작품 제목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사진의 출현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똑같은 모방'의 그림은 그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여기에 르네상스 및 산업혁명 이후 줄곧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덧붙여지면서 회화와 조각은 작가적 영역으로 이동하게 됐다. 예술가들은 후원자들에게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하청업자가 아닌, 자의식을 가진 주체로서 자기의 욕망에 따라 그림을 그렸고, 이렇게 자식처럼 탄생시킨 작품에 제목과 이름을 지어주었고 서명을 남겼다.


'현실 재현'과 이별한 미술, 제목조차 거추장스러워

그러나 역설적으로 일부 창작자들은 의도적으로 작품 제목을 지워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예술가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허락되지 않아서 자신의 창작품에 제목이나 이름을 부여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일부러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 몇몇 화가들은 자연, 사람, 사물 등 구체적인 형상의 재현보다는 선, 면, 색채 등의 시각적 요소들로 작품을 제작했다. 20세기 초의 추상회화는 서서히 시각 예술 세계의 큰 부분이 되기 시작했다. 추상미술을 이끌었던 예술가들은 형상의 '재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의미라고 보았다.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본질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바로 인간 이성의 완성이라면서 말이다. 일종의 '열반'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순수미술 혹은 추상미술이라고 부르면서 예술가들은 “감히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이름이나 제목 자체를 지워버린 셈이다. 그림은 더 이상 사물의 모방과 재현이 아니라는 인식이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을 가르는 변곡점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대예술의 사고체계는 예술가들이 단독으로 이끌어냈던 것은 아니었다.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여러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사고 실험도 시대의 흐름과 함께했다. 20세기 철학의 큰 흐름이 되는 구조주의, 현상학, 기호해석학, 수용미학,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논의 등 다양한 의견들의 면면을 짚어보면 ‘무제’의 의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면에서 그 길고 지난한 이야기들을 다 살펴볼 수는 없겠다. 다만, 빈센트 반 고흐의 유명한 '신발' 작품을 둘러싸고 펼쳐졌던 철학 논쟁을 통해 무제의 의미를 유추해 보자.

빈센트 반 고흐의 '신발'. 1886년작,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빈센트 반 고흐의 '신발'. 1886년작, 반 고흐 미술관 소장.


고흐의 '신발' 그림을 둘러싼 논쟁

'고흐 신발 논쟁'의 시작은 실존주의 독일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밝힌 고흐의 신발 작품 해석이었다. 이후 미국의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가 비판을 가했고, 이를 두고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최종적으로 양측 모두를 반박했던 유명한 철학 논쟁이다. 논쟁을 난해한 학술적 용어들을 빼고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이데거는 고흐의 작품에서 허름한 농부의 신발이 '드러내 주는' 농촌 아낙의 본질적 삶을 거론하면서 "화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구두라는 진리 앞에 서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이데거는 신발의 주인을 농촌 여인으로 보았고, 대지 위에서 서 있는 노동의 고단함과 존재자의 진실에 대한 한 편의 시와 같은 감상을 기록했다.

2. 이에 대해 샤피로는 인신 공격에 가까운 반박으로 비판했다. 나치 측근으로 소문난 하이데거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던 샤피로는 하이데거가 고흐의 신발에 대해 전혀 사실관계가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고흐는 1886년 프랑스 몽마르트르 골목의 한 중고물품 가게에서 한 쌍의 신발을 구입해 그리기 시작해서 약 2년간 다양한 신발 연작 시리즈를 제작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고흐의 신발은 파리라는 대도시에 사는 도시인의 신발이지 결코 농부가 수고로운 땀을 흘리며 대지를 밟던 신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팩트(사실)가 틀렸다는 지적이다.

3. 이후 이들의 논쟁을 지켜본 데리다가 발끈하고 나선다. "우선 둘 다 틀렸는데, 샤피로의 말이 더욱 수준이 낮다"고 공격했다. 그는 이 구두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예술작품에 대한 궁극의 해석은 있을 수 없으며, 예술 작품이 열어주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 신발은 한 켤레가 아니라 왼쪽 신발 두 개라고 지적한다. 고흐의 '신발'을 보면서 누구의 신발인지 캐묻는 '복원' 작업이 아닌, 그 누구의 신발도 아니라는 데서 출발하는 '해체' 작업을 통해 "예술작품을 우리는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뭣이 중헌디!"를 외친 셈이다. 그림을 둘러싼 사실관계, 작가의 의도 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소통하는 감상자의 열린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왼쪽부터 마틴 하이데거, 마이어 샤피로, 자크 데리다.

왼쪽부터 마틴 하이데거, 마이어 샤피로, 자크 데리다.


작가의 뜻보다 독자의 감상에 방점

데리다의 이러한 수용미학적 태도는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1968)이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에세이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다. 바르트에 따르면 '저자'란 무릇 그 시대, 그 사회 속의 여러 목소리 중 하나일 뿐이며, 저자의 작품은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그 이전 선조들과 문화가 남겨놓은 것을 빌려와 조립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죽음에 대한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독자의 탄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품을 생산한 창작자보다 작품을 읽는(감상하는) 독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술가의 죽음과 동시에 감상자가 탄생한다. 저자를 '제목'으로 바꾸어 읽는다면, 작품 제목이 죽고 없어진 자리에 등장한 '무제'는 그러므로 감상자의 영역이 된다.

7살 딸과 집에 돌아온 후, 고흐의 신발 그림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신발이 너무 더러워" 하며 깔깔 웃었다. "옛날에 세 명의 할어버지들이 이 그림 때문에 싸웠대. 첫 번째 할아버지는 더러운 신발을 신어야 했던 사람을 상상하며 감격했고, 두 번째 할아버지는 이 신발은 시골이 아니라 도시에 살던 사람이 주인이라면서 웃었고, 세 번째 할아버지가 버럭하면서 이 그림은 보는 사람 마음대로 보면 되는 거라고 했대." 그러자 아이는 "마지막 할아버지한테 내가 그린 그림 보여줘도 되겠다"며 더 크게 웃었다.

김환기의 '무제' 작품을 보면서 왜 정답이 없냐는 딸 아이의 질문에 그 즉시 해주지 못했던 답을, 이제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보는 방법에는 하나의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애당초 그림 자체가 하나의 질문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이 던지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작가만의 몫도 아니며, 오롯이 관람자의 몫도 아닌,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모든 것과 삼자대면으로 찾아나가는 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좋은 비평은 있어도 정답은 없다. 그림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 없다. 작품에서 반드시 어떤 강렬한 감동을 느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 어떤 사회를, 역사를, 한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느끼고, 맛보면 되는 것이다. 정답이 없다는 즐거움, 그 무한한 맛의 세계.

"응, 정답은 없단다. 아까 네가 하늘 나는 새들 같다던 무제 그림 기억하지? 움직이는 새들은 분명히 그 그림 속에 있을 거야. 그런데,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고, 또 할머니가 되면 저 그림을 다시 보렴. 아마 그때는 또 다른 답이 보일 거야. 기대되지?"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주영 미술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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