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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환상이 현실 가리지 않길"... 드라마가 마냥 반갑지 않은 장애 법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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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라는 환상이 현실을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재학 중인 권태훈(28)씨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변호사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드라마 시청 소감을 한 문장으로 대신했다. 그의 짧은 말에는 '우영우 변호사가 장애인들의 법조 생활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중증 지체장애를 가진 자신과 드라마 속 우 변호사를 비교하기 일쑤인 주변 사람들에게 내놓은 답변이기도 했다. 도대체 실상이 어떻길래 그는 이런 말을 하게 됐을까.
권씨가 2018년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비장애인 입학생들처럼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은 같았다. 향후 장애인을 돕겠다는 목표를 세운 점이 달랐을 뿐이다.
권씨의 로스쿨 생활은 처음에는 녹록지 않았다. 일단 시설 자체가 전동휠체어를 타는 권씨에게 불편함을 줬다. 권씨는 "모의법정 강의실만 해도 10~15cm 높이의 턱이 있어 변호사 자리까지 가는 게 고역"이라고 했다. 휠체어 두 개만 들어가면 꽉 차는 장애인 휴게실도 그에겐 쉼터가 되지 못했다.
학습 지원도 부족했다. 권씨는 "펜으로 장시간 답안을 작성할 수 없어 노트북으로 시험을 봐야 하는데, 일부 교수님들은 시험지를 PDF 파일로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각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겐 치명적인 문제였다. 중증 시각장애가 있는 김재왕 변호사는 "화면 읽기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교재 파일을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라며 "시중에 나온 문제집은 파일이 없어서 변호사 시험 준비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변호사 시험도 난관이다. 일단 시험 장소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법무부가 △음성형 문제와 보조장비 제공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편의 지원을 신청한 중증장애인 시험장을 중앙대와 연세대로만 한정했기 때문이다.
시험 일정도 빡빡하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시험 시작 시간은 빠르고, 종료 시간은 늦다. 예컨대 중증 시각장애인은 시험이 오전 9시 10분에 시작해 오후 8시 50분에 끝난다. 이런 일정이 쉬는 날 하루를 제외하고 4일 내내 반복된다. 변호사 시험을 쳤던 중증 뇌병변장애인 A씨는 "회복이 더딘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살인적인 일정"이라고 비판했다.
어렵사리 법조인이 돼도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김재왕 변호사는 "판결문 PDF 파일 본문이 이미지 형태라서 화면 읽기 프로그램을 인식 못 하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한 지체장애인 변호사는 "법원, 검찰청, 경찰청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아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판사도 예외는 아니다. 중증 시각장애가 있는 김동현 판사는 "법원 내부에서 쓰는 일부 프로그램이 화면 읽기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며 "새로 개발하는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은 접근성을 고려해 개발될 예정이지만,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개선하는 건 쉽지 않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 탓에 법조계에 발을 들이는 장애인들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로스쿨 입학 장애인은 2009~2013년 연평균 16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6명까지 줄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장애인(편의 지원 신청자 기준)은 36명뿐이다.
법무부는 2023년 대전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대전·부산·광주·대구로 중증장애인 시험장을 확대하고, 시험 일정도 장애인 응시자의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그러나 "변화가 더디다"고 지적한다. 김남희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중증장애인의 시험장 선택권을 제한하는 건 행정편의적이고, 현재의 시험 일정은 장애인복지법상 동등한 편의제공 위반 소지까지 있다"며 "법무부가 '우영우 변호사'가 현실에 없는 이유를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형두 연세대 로스쿨 교수도 "제도 설계와 실행 단계에서 장애인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정기적으로 모니터링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주민 의원은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직업을 찾고, 일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선 단계마다 충분한 편의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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