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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 보내라고 말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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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6월, 차에 탄 일가족 3명이 전남 완도의 바닷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빚에 시달리던 부모가 초등학생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차에 태워 바닷속으로 돌진한 사건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빅카인즈'에 따르면, 한 달간 관련 기사만 약 1,000건이 쏟아졌다. '동반자살' 대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는 보도가 공통적으로 나왔다. 지난해 자녀 살해 피해자만 14명에 이른다.
기사들은 자녀 살해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한국 특유의 문화'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모들의 복잡한 심리를 설명하기엔 어딘지 부족하다. 그보다는 커다란 상처를 껴안은 채, 혼자 살아가야 할 아이의 서러운 삶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부모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주거·고용 불안으로 서른이 넘어도 자립하기 쉽지 않은데(미혼 30~34세, 35~39세 중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은 각각 57.4%, 50.3%) 미성년자는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공고한 나라에서 부모 없는 10대가 매일을 무탈히 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유치원생만 돼도, 부모의 손길이 필요할 일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수많은 준비물이며 가정 연계 활동을 챙겨야 함은 물론이고 때때로 '아빠와의 캠프', '가족 운동회'도 열린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부모의 빈자리를 체감하는 순간은 제곱의 법칙처럼 급격히 늘어난다.
주머니라도 두둑하면 다행인데, 대개 민간(법인)이 운영하는 보육원은 시설이 열악하고 재정도 취약하다. 만 18세가 돼 시설을 떠나야 하는 자립준비청년이 정착지원금으로 손에 쥐는 돈은 고작 800만 원(복지부 권고 기준)이다. 이마저도 지방이양사무라 지자체 재정에 따라 500만~1,500만 원으로 널을 뛰는 '불안한 돈'이다. 지난달 21일, 보육원 출신 대학생 A(18)씨가 재학 중이던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자립정착금을 대학 등록금과 기숙사비로 거의 다 써버려 금전적 고민이 컸다고 한다. 숨지기 며칠 전에는 보육원 관계자에게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힘들다'는 호소도 했다.
자녀 살해의 원인을 복지가 부실한 사회의 '탓'으로 돌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명백한 아동학대, 살인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자는 것 또한 아니다. 어쨌든 부모가 자기 마음 편하자고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자녀 살해의 비극이 반복되는 데는 사회의 '책임'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녀 살해 기사에는 매번 '애가 무슨 죄냐', '보육원에라도 보내지'와 같은 댓글이 달린다. 부모라고 그런 대안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안타까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홀로서기에 나서는 '열여덟 어른'은 매년 약 2,500명 규모다. 혜성처럼 나타나 몇 년째 시대를 지배 중인 수저계급론, 이 냉혹한 피라미드에조차 편입되지 못한 아이들이다. 이들에게 수저를 쥐여주고, 맞은편에 앉아 밥 먹는 모습을 지켜봐주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럴 명분도, 재정도 충분하다. 부족한 건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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