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특위조차 여당 내홍에 공전
야당은 ‘못난 여당’ 탓하며 독자행보
정부·여당 개혁 원칙, 방법, 일정 내놔야
나라 경제와 청년세대의 미래를 좌우할 연금개혁을 정치권이 또다시 ‘헛바퀴’ 돌릴 작정이 아니라면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질 수 없다. 여야가 입을 모아 연금개혁을 외친 대선이 끝난 지 불과 5개월도 안 돼 개혁의 최상위 추진체라 할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특위)가 시동도 못 건 채 탈선 조짐부터 보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개혁을 포기해 국민적 비판을 받자,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연금개혁을 관철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는 흐지부지되고, 국회에 특위가 설치되는 것으로 사실상 대체됐다.
연금개혁 추진체가 국회 특위로 변경되면서 추진 트랙도 어정쩡하게 분화하는 양상이다. 정부 쪽은 보건복지부가 전문위원회 구성을 마치고 지난 8월 말 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 작업에 들어가면서 우선 국민연금 개편에만 초점을 두는 모습이다. 반면 국회 특위는 연금재정 안정, 노후소득 보장 등은 물론,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을 포함한 연금 구조개혁까지 포괄적으로 논의하겠다는 건데, 정확한 활동범위나 구체적 의제조차 아직 분명히 정리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지금 상황은 뒤죽박죽이다. 국회 특위 출범 때만 해도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연금개혁에 실패했음을 새삼 강조하며, 더불어민주당에 연금개혁 협치에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걷잡기 힘든 당 내홍으로 특위 위원장을 맡은 주호영 의원부터 비대위원장이니 뭐니 오락가락하면서 어느새 연금개혁은 아예 까맣게 잊힌 것 같은 분위기가 됐다.
집권 여당이 난장판이 돼 끈을 놓다 보니, 야당도 걱정스러운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15일 민주당 특위 및 보건복지위 의원들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체 간담회를 갖고 “특위가 만들어졌지만 여당 측에서 어떠한 제안도 못 받았고, 회의조차 열리지 못했다”며 “민주당이라도 먼저 나서 개혁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독자 논의 본격화 입장을 냈다. 어찌 보면 못난 여당을 대신해 야당이라도 앞서 움직이겠다는 ‘갸륵한 충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큰 원칙에 대한 사회·정치적 합의 없이, 여야 어느 한쪽의 구체적 논의만 앞서면 나중에 개혁방향조차 합의에 도달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국회 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연금개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야당 독자 논의가 진전될수록 정부·여당과의 개혁방향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키운다.
연금개혁은 어떤 식으로든 당장은 국민 고통분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민 대다수가 개혁의 불가피성에 수긍하고 동의하는 이유는 연금재정 고갈, 소득보장 위축, 국민연금과 직역연금과의 형평성 문제 등 공적연금의 고질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야말로 과거 연금개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출발부터 연금개혁 범위, 거버넌스, 국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 추진 방식 등을 확고히 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선 개혁 대원칙부터 합의해 명확한 방향을 정한 뒤, 세부 절충으로 나아가는 논의의 틀도 확고히 정립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판세로 보면 국회 특위는 내년 4월까지인 활동기한 내내 여야 간 평행선만 달리는 대립만 되풀이하다 말기 십상이고, 고작해야 국민연금만 정부 의도대로 ‘더 내고 덜 받는’ 모수개혁을 하는 시늉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연금개혁이 또 한번의 ‘국민 기만극’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정부·여당부터 당장 결연한 행동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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