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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천엔 공원·산책로만... 이젠 '친수'보다 '치수' 주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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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를 관통해 동해안으로 흐르는 냉천. 15일 이곳을 찾았을 때, 냉천은 한국 소하천이 평상시 보여주는 건천(마른 하천)의 전형적 특성을 드러냈다. 바닥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고, 징검다리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수심이 얕았다.
이곳은 불과 9일 전 태풍 힌남노 내습 때 발생한 집중호우로 홍수가 진 지점이다. 당시 냉천 주변엔 시간당 최대 110㎜의 폭우가 내려, 마른 하천인 냉천에 순식간에 거대한 양의 물이 흘러들었고, 결국 탁류가 제방을 넘어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까지 흘러갔다.
냉천은 한국의 여느 소하천과 마찬가지로 가뭄 때 최소 유량과 홍수 때 최대 유량의 차이가 극도로 크다. 이 최소량과 최대량 비율을 하상계수라고 하는데, 냉천의 하상계수는 1:291 정도로 추정된다. 홍수 때 흐르는 물의 양이 가뭄 때의 291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라인강(1:14), 양쯔강(1:22), 나일강(1:30) 등 주요 해외 하천에 비해 10배 이상 변동폭이 크다.
그럼에도 냉천 인근에는 산책로, 벤치, 자전거도로 등 친수시설만 들어서 있을 뿐 천변 저류지 등 홍수를 대비한 시설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실제 냉천(지방하천)을 관리하는 포항시가 지난 10년간 쓴 예산을 봐도, 관련 사업은 모두 친수공간 조성에만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포항시에 따르면, 2012년부터 실시된 냉천 정비사업에는 국비 179억 원, 시도비 118억 원 등 총 297억 원이 투입됐지만, 주민 편의시설 설치에만 예산이 쓰였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그 기간 동안 홍수 조절을 위한 시설물은 하나도 설치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환경 미화에만 예산이 투입된 냉천의 사례가 전국 대부분 소하천에서 발생하는 일반적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눈에 띄는 효과를 보기 어려운 치수 사업보다는 가시적 성과가 바로 나오는 친수 사업에 우선권을 두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소하천 방재에 예산이 투입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음에도, 중앙정부가 지자체 예산 활용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교부금을 내려보낼 때 '치수사업 용도'를 별도로 지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대다수 지자체들이 하천사업 예산을 여가시설 확충에만 투입하며 단체장의 치적 홍보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게 정 교수 설명이다.
하천 바닥에 쌓이는 퇴적물을 걷어내는 준설 관련 규정이 미비한 점도 소하천 홍수 방재를 구조적으로 어렵게 한다. 정 교수는 “대부분 지자체에 준설 대상 지역 선정에 관한 일관된 기준이 없다”며 “서울 중랑천 등 강우 때마다 뉴스에 등장하는 몇몇 하천을 빼면, 정기적 준설을 위해 현장을 조사하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미 있는 제도마저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2013년 국토계획법을 개정해 재해 위험이 큰 지역을 광역자치단체가 방재지구로 지정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홍수나 산사태 등 같은 재해가 10년 내 2회 이상 발생해 인명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향후 동일한 재해 발생시 상당한 피해가 우려되는 곳을 방재지구로 지정해야 한다.
그러나 국토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지정된 방재지구는 11곳에 불과했다. 특히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주거지역 등 시가지에 지정된 방재지구는 전남의 5곳이 전부다. 냉천이 범람한 경북 포항시에는 방재지구가 한 곳도 없다. 구형수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각종 세제혜택 등이 제공되는 특별재난지역과 달리 방재지구 지정은 규제만 많을 뿐 실익이 없어 활성화되지 못했다”면서 “방재지구 지정시 권고나 독려 수준에 그치는 수준을 넘어 인센티브 지원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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