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값 리터당 500원 오를 수도... 내년 새 가격 결정방식 도입

입력
2022.09.16 20:00
구독

생산비만 연동→ 시장 수요·공급 반영
농가·업계 갈등 속 진통 끝에 개편 합의
도입 대가로 올 원윳값 대폭 인상 가능성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우유. 뉴시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우유. 뉴시스

내년부터 원유(原乳) 가격 결정 방식이 바뀐다. 기존 생산비 외에 시장 수급 상황도 고려하기로 농가와 업계가 합의하면서다. 길게 보면 시장 원리를 따르는 일종의 ‘정상화’지만 손해 보는 쪽에 제공될 반대급부 탓에 당장 우윳값은 가파르게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16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낙농진흥회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원유 용도별 차등 가격제’ 도입이 골자인 낙농제도 개편안을 의결했다. 새 제도의 핵심은 ‘음용유’와 ‘가공유’의 가격 차등화다. 음용유 가격은 현재 수준이 유지되고, 치즈 등 유가공 제품에 쓰이는 가공유 가격에만 시장 수요가 반영된다. 우유 소비가 감소세인 만큼 가공유는 저렴해질 공산이 크다. 지금은 원윳값이 공급 변수에만 좌우되는 구조(생산비 연동제)여서 수요가 줄어도 가격이 비싸질 수 있다. 낙농진흥회는 낙농가와 유업계, 정부, 소비자, 학계가 두루 참여하는 유제품 수급 조절 기구다.

여정은 험난했다. 총대를 멘 쪽은 정부였다. 기존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가격 왜곡의 여지가 있었다. 1990년대 농산물시장 개방 이후 농가 소득 보전은 건드리기 힘든 전제였지만, 지난해 8월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가공유 가격만 좀 떨어뜨리자는 절충안을 내놨다. 기득권 농가의 반발은 당연했다. 납품 거부를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내심 개편을 바라 온 유업계도 배수진을 쳤다. 값싼 외국산과의 경쟁에서 밀린다고 여기던 터였다. 농가의 전향이 없으면 올해 가격 협상에 응할 수 없다며 버텼다.

낙농가로서는 사실상 다른 도리가 없었다. 사료 가격이 올라 비용이 늘었고, 협상을 해야 원윳값을 올려 받을 수 있었다. 입장을 고수하다 가격 인상이 미뤄질 경우, 이미 들인 돈이 부담으로 돌아올 형편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부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이사회를 통과했다고 새 제도가 곧바로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유업체별 음용유ㆍ가공유 구입 물량이나 대금 정산 방식, 원유 생산량 부족 때 대비책 등 세부 사안에 관한 협의 절차가 남아 있어서다. 내년 1월 시행이 정부 목표다.

이제 문제는 올해 원유 가격이다. 대폭 오를 개연성이 있다. 제도가 개편되며 장기적으로 가격이 떨어질 게 뻔한 만큼, 마침 사룟값도 올랐겠다, 낙농가로서는 새 제도가 적용되기 전인 이번이 향후 협상에 대비해 시작 가격을 최대한 끌어올려 놓아야 하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유리한 쪽으로 제도 협상을 마무리한 유업계도 가격 인상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양보의 대가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우려되는 것은 소비자 피해다. 일부 예상대로 원윳값 인상폭이 생산비 연동제가 도입된 2013년 이후 최대인 리터(L)당 58원에 이를 경우, 우유 소비자가격 상승폭이 L당 500원까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종= 권경성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