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흰쑥 키우는 화장품 회사…자생식물 복원에 진심인 LG생활건강

입력
2022.09.22 10: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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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울릉도 자생식물 가든서 식물 보전·복원
생물다양성 보존 기반 마련·화장품 원료 개발도
"우리나라 다양한 자생식물의 유용성 알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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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이 충북 청주시에서 재배하는 자생식물 천초화. LG생활건강 제공

LG생활건강이 충북 청주시에서 재배하는 자생식물 천초화. LG생활건강 제공


백두산의 강가 둔덕에서 자란다는 자생식물 산흰쑥. 쑥 종류 중에서도 가장 향이 진하고 약성이 좋아 화장품 성분으로도 잠재력이 충분하다. 문제는 생육 환경이다. 산지가 자생지인 산흰쑥에서 화장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추출물을 얻으려면 낮은 지대에서도 대량 증식이 가능해야 한다.

LG생활건강은 면적 4,950㎡(1,497평)에 달하는 충북 청주시의 '청주가든'에서 이 식물을 직접 길러 내고 있다. 9월이면 꽃이 피고 열매도 맺는 시기라 LG생활건강 연구원의 손길이 바빠진다. 연구원들은 고산지대가 아닌 청주에서도 산흰쑥이 자랄 수 있도록 순화기술과 종자발아, 꺾꽂이 및 조직배양 등 기술을 개발해 대량 증식을 진행한다. 증식이 잘 되면 적정 채취 시기를 연구하고 여러 효능 분석을 거쳐 산흰쑥을 화장품 원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자생식물을 연구하는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자생식물의 증식을 확대하면서 원료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할 것"이라며 "화장품 품질은 유지하면서 피부에 새로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소재로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자생식물 자원 개발은 생태계 기능 복원이라는 사회적 효과를 창출하면서 자사 제품의 경쟁력까지 높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라는 의미다.



청주가든, 키우는 식물만 250여 종…왜 키우나

LG생활건강에서 운영 중인 충북 청주시의 '청주가든' 전경. LG생활건강 제공

LG생활건강에서 운영 중인 충북 청주시의 '청주가든' 전경. LG생활건강 제공


LG생활건강이 자생식물 자원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충남 천안에서 약 3,967㎡(1,200평) 규모로 가든을 운영하다가 6월 자동환경조절 유리온실 등 첨단 시설을 적용해 청주로 확장 이전했다. 이곳에서 키우는 식물종만 250여 종, 개체 수는 2만 개가 넘는다. 이외에 회사는 울릉도에도 약 990㎡(299평) 규모의 가든을 운영해 다섯 가지 종류의 자생식물을 기르고 있다.

LG생활건강이 이 사업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산림 복원 효과다. 국내 자생식물은 인위적 간섭, 기후 변화 등으로 서식지뿐 아니라 종 수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5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야생에서 자라는 자생식물 10종 중 1종은 멸절 위협에 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야생 자생식물 2,522종 중 위급·위기·취약 범주로 분류된 식물은 275종으로, 전체의 10.9%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LG생활건강 자생식물 재배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LG생활건강 자생식물 재배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자생식물을 복원해 놓으면 국제협약규범 '나고야 의정서'에 적극 대응할 수도 있다.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채택된 나고야 의정서는 한 국가가 특정 국가의 생물자원을 이용할 때 사전 허가를 받고 별도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다른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나고야 의정서로 국가별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바이오산업의 원료 공급원인 산림생명자원을 꾸준히 이용하는 것이 기업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며 "자생식물 자원 개발로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LG생활건강은 울릉도와 세종시의 지역 농가와 재배 계약을 맺어 현재 울릉나리 등 아홉 종의 자생식물을 키우고 있다. 지역 농가와의 계약 재배로 농가 소득을 향상시키고 지역 사회에 긍정적 효과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수목원,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등 식물 관련 전문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인 울릉군 등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자생식물 자원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자생식물 '천초화', 실제 화장품 개발로

자생식물인 천초화 성분을 활용한 '더 히스토리 오브 후'의 천율단 라인 제품 이미지. LG생활건강 제공

자생식물인 천초화 성분을 활용한 '더 히스토리 오브 후'의 천율단 라인 제품 이미지. LG생활건강 제공


자생식물 재배는 실제 화장품 개발로 결실을 맺기도 했다. 지난해 울릉도에서 재배한 식물 천초화에서 자연건조법을 통해 '궁중천초화TM' 성분을 개발, 럭셔리 브랜드 '후'의 '천율단' 라인 전 제품에 적용한 것이다. 천초화는 보습 성분인 히알루론산 합성 효능이 우수하고, 잡티의 원인이 되는 멜라닌 저해 능력이 있어 피부 보습과 얼굴을 밝혀주는 효능이 뛰어나다.

천초화는 꽃이 하루만 피고 지기 때문에 7, 8월 꽃이 피기 시작하면 울릉도 계약 농가에서 연구원들이 매일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딴다. 이후 중온, 압화, 건조 등의 과정을 거쳐 화장품 원료로 사용한다. 천초화는 매년 싹이 나오는 다년생 식물로 봄이면 생육 증진을 위해 부엽토 등 천연 양분을 공급하고, 꽃 수확이 끝나면 제초 작업 등 뿌리 생장이 잘 될 수 있도록 1년 내내 끊임없이 관리를 이어간다고 한다.

LG생활건강은 2028년까지 약 500종의 자생식물을 수집 및 증식한다는 목표다. MOU를 맺은 공공 기관도 4곳에서 6곳으로 확대하고, 200여 종의 유전자 정보를 구축할 예정이다. 산흰쑥뿐 아니라 범부채, 작살나무 열매 등을 제품에 반영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꽃이 아름다운 범부채는 남획이 심해 산림청 지정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돼 있다. 강원도 이남에만 분포하는 작살나무는 확보하고 증식하기 어려워 장기간 연구가 필요하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화장품은 특히 식물자원을 많이 활용하는데 소비자에게 친숙한 소재는 대부분 해외식물이라는 점이 안타까웠다"며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고 그 유용성도 높다는 점을 알리며 자사 화장품의 안정성과 신뢰도 높여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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