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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차별에 '유리 천장'이란 이름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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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세상에 처음 등장한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란 표현에는, 여성이 겪는 취업 승진 차별이라는 사전적 의미 의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1960, 70년대 여성운동이 연 길을 따라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여성들은, '유리 천장'이라는 강력한 상징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알고는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막막한 차별의 실체를 '물증'처럼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유리 천장'은 여성운동의 새로운 전선이기도 했다. 유리 천장을 허물기 위한 숱한 저항과 파열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젠더 평등의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미국인이 가장 애용한다는 '메리엄-웹스터 칼리지 사전'도 1993년 제10판에, ‘date-rape(데이트 강간)’ 등과 함께 저 신조어를 등재했다. 사전은 유리 천장을 “여성 또는 소수자가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것을 가로막는 위계 상의 보이지 않는 장벽(intangible barrier)”이라 정의했다.
21세기 ‘교차성 페미니즘’이 부상하면서 유리 천장은 아시아계 여성이 겪는 이중의 차별을 가리키는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 가톨릭 등 종교계의 ‘스테인드글라스 천장’, 정부기관 등 공직 사회 여성들의 ‘대리석 천장’, 제조업계의 ‘아크릴(Perspex) 천장’ 등으로도 분화하며 진화했다. 젠더 차별을 넘어 난민들이 겪는 취업 등 사회적 차별을 가리키는 ‘캔버스(canvas) 천장’이란 말도 등장했고, 페미니즘 백래시 진영은 젠더 역차별, 즉 여성이 누리는 이점을 부각하기 위해 ‘유리 승강기(glass elevator)’란 말도 만들어냈다. 근년에는 유리 천장의 은유가 여성이 겪는 차별의 복잡한 양상을 단순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어쨌건 ‘유리 천장’은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이 도달한 높이인 동시에 상징적 한계였고, 80년대 이후 여성운동이 허물고 넘어서야 할 완고하고도 논쟁적인 장벽이었다.
유리 천장이란 말은,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이 창립한 여성행동연대(WAA) 후원으로 1978년 뉴욕 맨해튼 루즈벨트 호텔에서 열린 ‘직장 여성 박람회(Women at Work Exposition)’에서, 토론회 패널로 참가한 당시 만 31세 뉴욕전화회사(현 Verizon New York) 인사과 직원 매릴린 로든(Marylin T. Loden,1946.7.12~2022.8.6)이 처음 썼다. 그날 원고도 없이 단상에 앉아 있던 로든이, 즉석에서 저 표현을 만들어내야 했던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인 남성 젠더사회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인 여성들, 특히 엄연히 실재하는 ‘천장’을 보지 못하는 나머지 패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그 맥락을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당시 여성운동의 현안과 저 행사의 취지를 간략하게라도 살펴봐야 한다.
1970년대 중후반은 미국 여성운동의 전환기이자 재편기였다. 60,70년대 미국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기여한 ‘의식 고양 모임(Consciousness-Raising Group)’을 소개한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무렵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동력을 잃고 젠더 권력에 대한 대항적 운동이 아닌 대안적 ‘반문화 공간(여성 공동체 운동)’으로 퇴각”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유엔을 비롯한 구미 여러 나라가 여성 평등권에 대한 법적 제도적 진전을 이루면서 ‘제도권 투쟁’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부푼 영향도 있었다. 유엔은 제3세계를 포함한 133개국 여성단체 대표 등을 초청해 1975년 6월 멕시코에서 첫 ‘여성 월드 컨퍼런스’를 열고, 여성 보건과 고용 차별, 젠더 폭력 등에 대한 각국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을 논의했고, 거기서 채택된 ‘모든 형태의 여성(소녀) 차별 철폐를 위한 협약(CEDAW)’은 무려 189개국이 비준했다.
당시 전미여성기구(NOW) 등 미국 여성운동 진영의 핵심 이슈도 '수정헌법 평등권 개정운동(ERA)' 즉, 수정헌법 14조 평등권 조항을 개정해 성 차별 금지를 명시하자는 거였다. 1923년 처음 제출된 개정안은 의회에 의해 번번이 외면당하다 72년에야 미 하원을 통과했다. 미국 보수의 '퍼스트레이디'라 불리는 맹렬한 반 페미니스트 필리스 슐래플리(Phillis Schlafly)가 가정의 가치 등을 내세워 ‘소수의 젊은 전문직 직장 여성’과 중년의 저소득층 전업 주부의 분열을 조장하며 전국적 반(反)ERA운동을 전개한 것도 저 시기였다.
WAA 행사의 초점도 ‘소수의 전문직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받는 차별을 부각하기보다, 모든 여성에게 ‘여성 해방 유토피아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생각한 유토피아는 “여성들도 좋은 직업(직장)에 자유롭게 진출(취업)할 수 있고, 가사를 포함해 여성들이 그간 수행해온 노동에 대해서도 합당한 보상을 받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성역할이 무너진 세상”이었다.
로든이 참가한 토론회 제목은 ‘거울아, 거울아(Mirror, Mirror on the Wall)’였고, 부제는 ‘여성의 열망이 직면하는 현실의 한계’였다. 백설공주 동화에서 차용한 저 제목처럼, 토론회는 여성이 직장에서 더 나은 성취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갖추고 보완해야 할 바를, 다소 반성적 취지에서 고찰하자는 취지였다. 패널은 페미니즘 잡지 편집장과 시티뱅크 여성 임원, 교육 관계자 등 모두 5명이었고, 직장 상사의 ‘대타’로 엉겁결에 참가하게 된 로든은 패널 중 최연소자이자 맨 마지막 발표자였다.
패널들은 여성이 직장 생활에 필요한 사회화(처세술)에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고, 자기를 열등한 존재로 이미지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낮은 자존감 때문에 커리어에 대한 열망도 스스로 제한한다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훗날 로든은 “그들의 지적과 비판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무척 힘들었다”고, “그 지적들은 인사과 중간간부로서 내가 보고 겪은 현실과 사뭇 달랐다. 물론, 여성이 일정 수준 이상의 커리어 사다리를 오르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는 건 옳은 지적이었고, 유능한 여성이 자기 능력을 스스로 의심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모든 문제점의 원인은 패널들의 주장처럼 여성에게 있는 게 아니었다”고 썼다.
그는 남성 관리자들이 여성 동료나 직원을 대할 때 드러내는 편견적 태도, 같은 일을 하는 같은 직급의 여성 급여가 남성들에 비해 적은 차별적 보상, 여성의 실수(실패)는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반면 성취는 덜 주목받는 현실, 여성 롤모델도 정서적 지지도 없이 버텨야 하는 여성들의 일상 등을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피력하며, 여성의 커리어와 열망을 가로막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invisible glass ceiling)’과 같은 조직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커리어를 가로막는 것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 같은 조직적인 문제다.
매릴린 로든, 1978년 '직장 여성 박람회' 토론회에서.
3년 뒤인 81년, 로든은 원치 않던 보직 인사 발령에 반발해 사표를 내고 ‘다양성 전문’ 경영 컨설턴트로 독립해 성공했다. 그의 고객사는 시티뱅크와 미항공우주국, 석유회사 셸, 프록터 & 갬블, 캘리포니아 대 등 다양했다. 그는 미 해군 당국을 위해서도, 조직내 다양성의 가치와 필요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비결 등을 주로 역설하며 조직 구성과 전략 등을 조언했고, 해군의 군대 내 성적 괴롭힘 근절과 여성의 잠수함 복무 금지 규정 철폐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유리 천장’이란 상징을 통해 여성이 겪던 차별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고, 누구보다 맹렬히 그 천장에 부딪치며 균열을 만든 매릴린 로든이 소세포성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로든은 1946년 뉴욕 뉴하이드파크에서, 셸 석유회사 임원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68년 뉴욕 주 시러큐스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뉴욕전화회사에 취업했다. 10년차 직장인이던 78년 당시 그는 회사 중간 관리자였고, 당연히 유리 천장의 피해자였다. 2017년 BBC 인터뷰에서 그는 남자 부서장으로부터 툭하면 '좀 자주 웃으라'는 주문을 들어야 했고, “회의 때마다 외모나 복장 지적을 당하곤 했다”고 말했다. 여성은 승진을 해도 폄하되기 일쑤였고, 그도 부당하게 승진에서 누락된 적이 있었다. 그보다 성과를 덜 낸 남성 동료를 승진시키며 당시 CEO가 밝힌 명분은 “남자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패밀리 맨’이기 때문”이란 거였다. 당시 로든에겐 한 독신자 모임에서 만나 72년 결혼한 광고기획자 겸 작가 남편(John Loden)이 있었고 자녀도 없었다. 그는 끝내 승진하지 못한 채 81년 직장을 떠나야 했다.
한편 ‘유리 천장’은 점차 새로운 사회적 갈등 이슈이자 기업 경영 현안으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그 변화는 로든의 컨설팅 사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여성적 리더십, 남자처럼 되지 않고 사업에서 성공하는 법(1985)’ 등 유리 천장과 조직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책 3권을 잇달아 출간했고, 강사로도 분주히 활동했다. 여성적 경영 리더십에 대한 최초의 경영서로 꼽히는 그의 첫 책은 그해 ‘The Library Journal’이 꼽은 ‘올해의 경영서 50선’에 뽑히며 6개 언어로 번역됐다.
1991년 미국 노동부는, 직장인의 46%가 여성이지만 관리자 직급 이상 여성은 5%에 불과하고, 여성 관리자의 급여도 같은 직급 남성의 70%에 불과하다는 요지의 ‘유리 천장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해 미 의회는 여성 및 소수자의 직장 내 인위적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이른바 ‘유리 천장법(Glass Ceiling Act of 1991’)을 제정했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OECD 29개국 여성의 직장내 지위와 급여, 교육 등 데이터를 근거로 첫 성평등 지수를 발표하며, ‘유리천장 지수(GCI)’라 명명했다.(한국은 최근 10년간 부동의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성별 연봉 격차, 즉 남성이 100달러를 받을 때 여성은, 파트타임 종사자를 포함해 80년대 말 68달러, 90년대 중반 74달러, 2004년 77달러로 점차 개선됐고, 2021년 5월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인구조사국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바, 2020년에는 84달러 수준에 도달했다(중간값 기준). 2020년 여성 근로자가 남성과 같은 소득을 얻으려면 연중 평균 42일을 더 일해야 하는 셈이라고 연구소는 전했다. 연령대별 격차에서 만 25~34세 여성 근로자 급여는 남성의 93%로, 1980년의 67%에 비해 현저히 나아졌다. 연구소는 업무 경험과 경력 등의 불이익, 고임금 직종에 여성이 상대적으로 덜 종사하는 구조적 문제, 임신 출산 육아 등의 부담과 경력 단절 등을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포춘 500대 기업’ 중 여성 CEO는 2000년 단 2명에서 2021년 41명(8.1%)으로 늘었고, 노동통계국 통계 집계 미국 전체 기업 CEO 중 여성은 2010년 24%, 2015년 27.9%, 2020년 29.3%(추산)였다.
저런 이슈들이 불거질 때마다, 수많은 이들이 유리 천장을 환기하곤 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어리사 프랭클린이 공개적으로 유리 천장을 언급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6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 직후 연설에서 “비록 가장 높고 견고한 유리 천장을 깨는 데는 실패했지만 유권자들 덕분에 1800만 개의 균열을 만들어냈고, 그 갈라진 틈으로 전례 없던 빛이 스며 다음에는 조금은 더 쉽게 길을 열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신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7월 힐러리의 민주당 대선후보 확정 전당대회 때는 첫 여성 국무장관(1997~2001 재임)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유리 천장 조각 브로치가 단연 주목을 끌었다. 올브라이트는 그날 트위터에 브로치 사진을 올리며 “오늘 밤 이후 이 브로치가 부서진 유리 천장의 마지막 잔해가 될 것”이라는 글로 힐러리를 응원했다. 그해 말 대선에서 패배한 힐러리는 “우리는 이번에도 ‘가장 높고 견고한 유리 천장’을 부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누군가는 이루어내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2021년 2월, 카멀라 해리스가 미국 여성 최초, 흑인 최초, 남아시아계 최초로 부통령에 취임한 직후, 워싱턴D.C 링컨기념관 광장에는 유리의 균열로 해리스의 초상을 형상화한 한 작가(Simon Berger)의 조형물이, 해리스가 부순 유리 천장의 상징물로 전시됐다. 그 전시를 기획한 미국여성사박물관 홀리 호츠너(Holly Hotchner) 관장은 “오늘의 성취는 카멀라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위해 행진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등 끊임없이 유리 천장에 부딪쳐 균열을 내 온 결과”라고 말했다.
유리 천장이 호명될 때마다 ‘유리 천장’의 원조 논란도 심심찮게 빚어졌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86년 3월 기사에서, 79년 휴렛패커드의 두 여성 직원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처음 썼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처음 활자화된 것은 84년 ‘직장 여성(Working Women)’이라는 잡지 편집장 게이 브라이언트(Gay Bryant)가 ‘AdWeek’란 매체에 쓴 칼럼에서였다. 수많은 이들의 증언과 진술 덕에, 이제 그 원조가 로든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공개적으로는 없다. 2019년 미국 NBC 인기 TV퀴즈쇼 ‘Jeopardy!’가 참가자들에게 낸 ‘유리 천장의 원조’ 문제의 정답도 ‘매릴린 로든’이었다.
유리 천장 은유는 여성이 직면하는 차별의 복잡한 양상을 더 이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앨리스 이글리, 린다 칼리, 2007년 '비즈니스 리뷰' 에세이에서.
유리 천장 은유에 대한 도전과 비판도 이어졌다. 흑인 여성들은 좋은 교육을 받은 전문직 백인 여성의 유리 천장과 달리 흑인 여성이 감당해온 차별은 노골적일 만큼 뚜렷하고 훨씬 강고하다며 ‘콘크리트 천장’이란 표현을 만들어냈다. 2007년 저서 ‘미로를 뚫고(Through the Labyrint)'라는 책을 낸 앨리스 이글리(Alice Eagly, 노스웨스턴대 교수)와 린다 칼리(Linda Carli, 웰슬리대 교수)는 그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에세이에, “어떤 이들은 포춘 100대 기업 CEO에 적으나마 여성이 포진한 사실을 들어 유리 천장이 허물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제 유리 천장 은유는 타당할 때보다 부적절할 때가 더 많고, 여성이 경력 전반에 걸쳐 직면하는 차별의 복잡한 양상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한다”고, “차라리 방화벽(firewall)이나 미로(labyrinth)라는 비유가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매릴린 로든은 미국행동과학연구소(NTL) 연구원(1979~2015)으로, 아메리칸대 공공행정대학원 객원 교수로 학생과 대중을 상대로 강의와 강연을 했고, 미 해군 다양성 자문위원회 활동(2003~08) 등에 대한 공로로 2016년 해군참모총장의 ‘최고 봉사 메달(Superior Service Medal)’을 받았다. ‘유리 천장 40주년’이던 2008년, 로든은 영국 BBC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고, 영감을 불어넣는 세계 100대 여성’에 뽑히기도 했다. 50주년이던 2018년 인터뷰에서 만 71세의 그는 “내가 죽기 전에 유리 천장이란 표현의 쓰임새가 끝나는 걸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그 표현이 나보다 오래 살아 남더라도 언젠가는 케케묵은(antiquated) 말로 전락할 것이고, 사람들은 ‘유리 천장이란 게 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든은 남편 존과 지난해 사별할 때까지 만 42년을 자녀 없이 해로했고, 86년 뉴욕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 요크셔테리어와 함께 살며 지역 사회의 동물권 보호운동과 나파 카운티 병원 건립운동 등에 앞장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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