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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집에 지네, 벌레가 매주 나와"... '빈집 공포'에 떠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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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때문에 우리 집에 지네, 바퀴벌레 같은 해충이 끝없이 나와요. 냄새도 고약하고, 보기도 싫은데 구청에 민원을 넣으면 '사유재산이라 (처리가) 어렵다'고만 하니 미치겠어요."
서울 종로구 옥인동 주민 김모(63)씨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한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철문이 녹슨 빈집이 나타났다. 스무 개 넘는 술병이 마당에 꽂혀 있고, 쓰레기봉투 더미가 쌓여 있었다. 담배 꽁초와 종이 등 쓰레기가 마당에 흙과 함께 뒤섞였다.
윗집에 30년간 살았다는 김모(63)씨는 "인근에 사는 학생들이 귀찮으니까 빈집에 쓰레기를 던지고 가는 데다 정화조(청소)도 안 돼 냄새가 난다"며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곳이니 피해가 더 커질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옥인동에서 2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홍모씨도 마을 곳곳에 있는 빈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모와 함께 산 고향이라 이곳에 카페를 차렸는데 바로 옆에 5년 넘은 빈집이 있어 악취가 난다"며 "손님들이 와서 눈살을 찌푸리거나 '왜 이걸 방치하냐' 악담을 쏟아낸 적도 많다"고 토로했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9년 서울시 빈집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종로구 빈집은 1,456가구(사전조사 기준)로 서울에서 가장 많다. 그중 옥인동의 이 마을은 전체 150여 가구 중 20여 가구가 빈집으로 남아 주민들의 골칫거리다.
이곳에 빈집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 건 재개발 계획이 틀어지면서다. 2007년 처음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사업시행인가까지 받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기조를 바꾸며 2017년 정비구역을 해제했다. 개발이 좌절되면서 주민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이때 해제된 구역만 393곳이다.
홍씨는 "지붕이 서로 엉켜 있는 무허가 건축물과 빈집들이 몇 년째 무분별하게 방치돼 있다"며 "재개발만이 답이었는데, 이젠 정부가 집주인을 빨리 찾든지 해서 하루빨리 이곳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8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또한 빈집으로 온 동네가 골치 아픈 표정이었다. 서대문독립공원 옆 골목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철거업체 광고가 붙은 펜스들이 녹슨 채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빈집들은 벽지가 다 뜯기거나 곰팡이 자국으로 가득했다. 집집마다 막걸리병과 우유팩, 나무판자와 유리조각 등 쓰레기가 쌓였다.
빈집에 누군가 들어왔던 흔적도 보였다. 한 빈집 2층 창문과 벽면엔 스프레이 낙서가 이곳저곳 어지러웠고, 맞은편 집에는 '서대문경찰서 특별순찰구역'이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75)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집에 큰 지네가 나와 못살겠다"며 혀를 찼다. "이번 폭우 때는 높은 곳에 빈집들이 많으니까 오물들이 넘어왔어. 그 집들이 무너질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또 다른 주민 김모(78)씨는 "지난해엔 타지 사람들이 두 명이나 빈집에 들어와 목숨을 끊었다"며 "노숙인들이 와서 숨지기도 하니 동네가 무서워 밤에 나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어 특별지역으로 관리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빈집 수색을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엔 원주민 12명과 세입자를 포함해 약 50명이 살고 있다.
이 지역은 2005년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추진됐지만 여전히 멈춰 있다. 한 재개발 추진업체 관계자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주민 동의 100%를 충족해야 하는데 합의가 어려웠고 결국 15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빈집으로 방치된 건 이곳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빈집은 지난해 9만7,000가구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전국 빈집은 2020년 151만1,306가구(통계청)로 5년 새 30%나 늘었다. 지난해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139만 가구가 비어 있다.
지방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은 전체 가구 중 빈집이 차지하는 비율이 3.2%에 불과했지만 △전남(14.3%) △제주(13%) △강원(12.3%) △전북(11.9%) 모두 10가구 중 1가구꼴로 집이 빈 상태다.
빈집은 늘어나지만 이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또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종로구 관계자는 "현행법상 지자체장 직권으로 빈집을 처분할 수 있으나 개인 재산이라 함부로 건드리기 조심스러워 정말 위험하거나 근거가 확실해야만 철거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종로구에서 직권 처분된 빈집은 아직 한 곳뿐이다.
빈집 소유자와 연락이 닿지 않다 보니 매매나 처분 동의를 받기도 쉽지 않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빈집 관리 플랫폼인 공가랑을 운영 중인데, 현재 소유자 동의하에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은 1,442건에 불과하다. 전체 빈집 가구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치다.
관련 인력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국토연구원 연구 결과, 지자체 내 별도의 빈집 정비팀을 운영 중이라고 답한 지역은 전국에 두 곳(인천시 미추홀구, 경북 포항시)뿐이다. 빈집 관리 담당자는 관련 업무 외에도 평균 2.4개의 다른 업무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올해 기준 지자체들이 빈집 관련 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평균 2억8,000만 원이었다. 국토연구원은 "빈집 철거 비용을 평균 2,500만 원으로 잡고 예산을 비교해 보면 전체 철거 소요 추정 비용의 3.5%"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빈집 관련 사업에 대한 국비 지원 비율도 평균 4%로 지난해 지방정부 일반재정 세입 예산의 약 26%가 중앙정부 보조금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열악한 수준이다.
빈집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법적 근거인 관련 조례조차 마련하지 않은 지자체는 전국 228개 지역 중 54개(23.7%)에 달했다. 빈집 실태조사는 19개 지역(8.3%)이 현재 시행하지 않았고, 연내 수행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빈집 관리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정희 국토연 부연구위원은 "현행 빈집 관리 정책 수단이 소유자 동의 없이는 빈집 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설계돼 실효성이 낮다"며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빈집 전담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물량에 집중하기보다 재고를 어떻게 충분히 활용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며 "빈집을 빨리 철거해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직권 처분 규정을 더 강하게 하거나 집이 비는 기간이 늘수록 세금을 더 물리는 빈집세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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