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이 떠나간(?) 자리

입력
2022.09.16 04:30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장이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차례상 표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간소화된 차례상을 선보이고 있다. 뉴스1

추석을 닷새 앞둔 지난 5일 성균관이 '차례상 표준안'을 깜짝(!) 발표했다. 송편, 삼색나물, 구이, 김치, 네 가지 과실이면 충분하고 정해진 음식 배치도 따로 없다. 이번에 발표된 '차례상 표준안'은 명절마다 언급되는 '명절 증후군', '남녀 차별', '이혼율 증가' 등의 사회 현상이 잘못된 의례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유교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문'이라는 게 성균관의 설명이다.

명절 즈음이면 익혀야 할 가족 호칭 목록이 언론 기사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1990년 10월 국어연구소(현 국립국어원)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기획한 '화법 표준화' 사업에 뿌리를 둔 '표준 언어 예절'은 그동안 가정과 사회의 언어 예절 지침서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일부 표현이 차별적인 말로 인식되거나 변화한 시대 상황에 적절하지 않다는 불만과 함께 국어원이 정확한 표현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호칭과 지칭은 서로 간의 배려와 합의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적인 영역이다. 언어 예절이 '지침'을 넘어 '규범'으로 기능함으로써 개인 간의 자율적인 조정 능력을 상실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2019년 펴낸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는 호칭어 사용 때문에 갈등하고 속앓이하는 국민에게 내놓은 국어원의 '반성문'이다. 거기에는 서로를 존중하며 주고받을 수 있는 호칭 표현들을 제외하는 '규범'이라는 협소한 틀을 내려놓고,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길을 찾아보겠다는 고백이 들어 있다. '규범'이 떠나간 자리에는 부디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키워낸, 서로를 잇는 소통의 꽃이 피어나기를 바란다.

최혜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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