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상 황동혁도... 해외서 수상하기만 하면 뜨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실은?

입력
2022.09.15 09:00
황동혁 '도가니' 박찬욱 'JSA' 봉준호 '설국열차' 등
해외 한국영화제서 상영 배제 지시된 적 있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12일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감독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고 손을 흔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미국의 TV 프로그램 시상식인 프라임타임 에미상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과거 박근혜 정권 때에 실행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는 내용이 재조명되고 있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감독상 수상, 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때도 동일한 '블랙리스트'가 회자된 바 있다.

지난 13일 황동혁 감독의 에미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대상 상업영화 목록'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돌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조명될 때마다 수시로 거론되는 이 게시물의 내용을 보면, 황동혁의 2011년작 '도가니'가 블랙리스트 영화 중 하나로 선정돼 있다.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와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근거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종합보고서'

'블랙리스트 영화 목록'의 근거가 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보고서'의 해외 한국영화제 상영 배제 목록 부분.

이 게시물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활동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을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 위 작품 외에도 '26년' '남영동 1985' '공공의 적' '베를린' '광해' '변호인' '부러진 화살' '화려한 휴가' 등이 "블랙리스트 영화"로 규정됐다.

실제 보고서를 보면, 이들 영화는 해외 한국문화원 등에서 개최하는 한국영화제에서 상영 배제 요청을 받은 작품으로 거명됐다. 물론 배제 요청이 모든 경우에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외 문화홍보기관에선 당시 "청와대가 해외 한국 영화제를 주시하고 있다"고 인식했으며, 실제로 블랙리스트 시행이 본격화한 2015년 이후엔 상영이 되지 않거나 드물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송강호와 이정재가 출연한 영화 '관상'은 해외 한국영화제 상영 배제 요청을 받은 영화 중 하나로 거론된다.

유명 상업영화 가운데서는 이 목록에 포함된 영화 이외에도 '관상'이 문제 영화로 분류돼 상영 배제 요청 대상으로 지목됐다. '관상'은 공교롭게도 2022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정재가 함께 출연한 영화다.

또 보고서는 2000년대 이후 영화뿐 아니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상계동 올림픽'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 사회고발적 내용을 담은 2000년대 이전의 한국 영화도 배제 대상으로 분류됐다.

'맨부커상' 한강도 블랙리스트였지만... 번역원은 '우회 지원'으로 버텨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오른쪽)과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2016년 5월 맨부커상을 수상한 뒤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영화뿐이 아니다. 영문 번역으로 2016년 맨부커상 국제 부문 수상작이 된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 역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룬 '소년이 온다'가 '문제도서'로 찍히면서,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지원하는 해외 문화교류 행사 지원 배제 지시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한강의 작품은 꾸준히 해외에 소개될 수 있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블랙리스트 실행 지시를 사실상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번역원은 한강을 비롯한 작가들이 상대국에서 초청을 받은 대상이고, 협의가 완료됐기 때문에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번역원 직접 지원 대신 해외 파트너를 통해 우회적 방식으로 지원을 이어갔다.

인터넷에서 긁어 만든 블랙리스트, 명단에 없는 게 더 이상할 지경

세월호 시국선언 등 9,473명의 이름이 적힌 블랙리스트. 60페이지에 달하는 이 명단은 한국일보 보도(2016년 10월 12일자)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진 바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캡처

'해외에서 상 타고 보니 블랙리스트에 있었다더라'고 정리된 공공연한 비밀은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문화계 작품이 알고 보니 모두 뛰어나다는 의미도 아니고, 뛰어난 문화계 인사를 의도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집어넣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워낙 무차별적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블랙리스트에서 빠진 게 오히려 어려울 지경이었음을 뜻한다.

2016년 10월 본보가 보도해 알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9,473명' 문건의 실제 목록은 알고 보면 중복이 많다. 실제 인원 수는 8,229명으로 파악됐다. 중복이 많았던 것은, 각종 시국선언이나 정치인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명단을 취합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출처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선언을 인용한 각종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문건 자체가 부실함을 지적하면서 "9,473명 명단은 실제 인적사항도 기재되지 않아 지원 사업에서 참고하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이 명단이 필요할 때마다 문체부 부서로 전달됐으며 산하 공공기관에서 해당 명단을 블랙리스트로 활용한 사실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문건을 들고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는 얘기다.

인현우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