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중일 국립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3국 고대 유물 전시회를 베이징에서 진행하면서, 고구려와 발해를 고의로 지운 한국 고대사 연표를 게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우리 측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연표를 맘대로 고친 것인데, 이런 무단 편집은 국제 전시회 운영 관례에 어긋날뿐더러 한중 간 갈등 사안인 동북공정식 역사관을 강변한 부적절한 행태다.
논란이 일자 중국 외교부는 13일 "고구려 문제는 학술 문제이니 정치적 조작(이슈화)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중 수교 30주년, 중일 수교 50주년 기념 행사 성격도 있는 전시회에서 이런 도발적 행태를 보인 것이야말로 정치 행위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정 및 사과 요구에 즉각 응해야 마땅하다.
2002년부터 5년간 동북 3성이 자리한 만주 지역 역사를 자국사로 일방 편입하는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강행한 이래로 중국은 '현재 영토 내 역사는 모두 중화민족 역사'라는 비합리적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 초반엔 고구려·발해에 집중됐던 역사 왜곡 행보도 고조선·부여로 거슬러 오르고 있다. 우리 정부의 문제 제기로 '한중 우호협력 관계가 역사 문제로 손상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2006년 정상 간 합의는 이미 무색해졌다.
게다가 중국은 중학교 교과서에 발해를 '동북 지역 소수민족이 건립한 정권'이라고 서술하는 등 이런 역사관을 적극 교육하고 있다. 자국 우월주의를 주입받은 중국 미래 세대에게 한중 간 상호존중과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 그래도 한국 젊은층 사이에선 중국의 권위적·고압적 행태에 대한 위화감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응도 문제다. 문제의 전시회가 7월 26일 개막했는데도, 국립중앙박물관과 주중 대사관은 언론 보도가 나올 때까지 한 달 넘도록 연표 무단 편집 사실을 알지 못했다.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 2005년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했지만 이후 이렇다 할 대응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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