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축구교실까지 시키더니 해고할 땐 프리랜서라고요?"...'가짜 3.3'의 비애

입력
2022.09.15 04:30

게티이미지뱅크


"헌신적으로 14년간 일한 저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하면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퇴직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도자들의 처우개선과 고용불안 해소를 외면하는 프로구단은 정부의 시정 명령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전 부산아이파크 유소년지도자 최우정(가명)씨

프로스포츠계 종사자들이 구단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사실상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구단의 막강한 권력과 폐쇄적인 스포츠계 특성 때문에 개인사업자로 계약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스포츠계의 발전을 위해서 스포츠 종사자들의 직업안정성을 보장하고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포츠계 개인사업자 위장 많아... 노동자 보호 사각지대"

시민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은 14일 서울 용산역에서 프로스포츠계의 '가짜 3.3 수법'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짜 3.3 수법'은 사용자가 사업장에 소속된 직원을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위장계약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사용자는 4대보험 가입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직원은 사업소득세 3.3%를 납부하는 프리랜서 신분이 돼 이를 '가짜 3.3'이라 부른다고 권리찾기유니온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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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기유니온은 이런 '가짜 3.3 수법'이 프로스포츠계에서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폐쇄적인 스포츠산업 특성상 구단의 영향력이 막강해 계약 형식이나 사업소득세 징수 여부를 정할 때 노동자가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프로구단의 유소년 지도자들이다. 길게는 10년 넘게 구단 소속으로 일했는데, 개인사업자로 계약돼 일방적으로 해고당하거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2년을 초과해 일한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선수나 체육지도자의 경우 예외적으로 2년 초과 고용이 가능하도록 한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는 "스포츠계 종사자들은 기간제법 예외 대상이기 때문에 근로자성을 인정받더라도 곧바로 정규직으로 간주되지 않아, 오히려 재계약 시기가 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면서 "부당함을 고발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프로축구 K리그2 전남드래곤즈에서 7년여간 유소년 감독으로 일한 박철진(가명)씨는 코치진 3명과 함께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계약 만료를 통보받았다. 그동안 구단의 지시를 받고, 보고하며 일했음에도 서류상으론 근로자가 아니어서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부당해고라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현재 구단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구단은 이들이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고 있고, 박씨 측은 근로자성을 인정해달라는 입장이다.

박씨는 "코치진이 유소년 지도와 관련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고, 사소한 것까지 구단에 보고하며 일했다. 그런데 계약 만료를 통보할 때는 우리가 개인사업자이고, 모든 일을 알아서 한 거라고 주장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 2시간씩 주 2회, 총 64시간을 지역주민 대상 무료 축구교실까지 열었는데, 어떤 개인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느냐"고 토로했다. 반면 구단 측은 이들이 재계약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성 인정에도 복직, 퇴직금 수령은 미지수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ITX4 회의실에서 열린 '2022 프로스포츠 가짜 3.3 미디어데이' 권리찾기 유니온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지만 프로구단들은 시정 지시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프로축구단 부산아이파크는 올해 6월 유소년 지도자에 대한 퇴직금 미지급에 대해 지방노동청으로부터 시정지시를 명령받았지만, 불이행하고 있다. e스포츠 프로게임단인 DRX의 감독도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지난 7월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부당해고로 판정받았지만, 사측은 여전히 후속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DRX 사건을 맡은 이언 변호사는 "사측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그들의 선수, 지도자 생명을 끝내겠다는 뜻"이라며 "이런 행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는 "스포츠 종사자들이 프리랜서라는 말로 은폐되는 순간 노동권을 넘어, 스포츠 전체가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며 "스포츠 종사자들의 직업안정성이 보장되고, 노동자성이 인정돼야 스포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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