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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놀아버릴 배짱' 차별 부순 '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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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퀴어여성게임즈가 돌아왔다. 2018년 6월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개최된 퀴어여성게임즈(Queer Women Games)는 여성과 성소수자가 차별 없이 스포츠에 참여하여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아마추어 생활체육대회이다. 2019년 9월 ‘느껴봐, 우리의 그라운드’로 두 번째 대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2022년 ‘다시 만난 그라운드’로 돌아온 것이다. 퀴어여성게임즈가 10월 1일과 2일 양일간 열린다는 소식에 내가 속한 풋살방과 농구방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역병과 장마와 더위로 지쳐버린 우리지만, 퀴어여성게임즈라는 7음절에는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언제 늘어져 있었냐는 듯 우리는 재빨리 대회에 참여할 팀을 짜고, 연습할 체육관을 찾아 나섰다.
농구냐 풋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022 퀴어여성게임즈는 배드민턴, 농구, 풋살 세 종목으로 진행되는데 두 종목에 출전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농구와 풋살 모두 참가하고 싶지만 내게 허락된 체력과 시간은 유한하여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풋살팀과 농구팀에서 동시에 제안이 들어온다면?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풋살팀의 합류 제안은 전혀 없었고 유물처럼 남겨진 농구방에 ‘오랜만에 한번 뭉쳐봐? 추억 한번 만들어 봐?’ 같은 다소 애잔한 제안이 있었다. 그렇게 한때는 라이벌이었던 이들과 한 팀이 되었다. 처음엔 센터 한 명과 포워드 두 명이라 조금 난처한 구성이었지만 첫 번째 연습이 끝난 후 뒤풀이에 놀러 온 옛 라이벌을 꼬드겨서 가드까지 갖춘 어엿한 팀이 되었다.
모든 시작에 퀴어여성게임즈가 있다
열세 살 때 처음 농구를 접하고 학창 시절 내내 농구공을 끼고 다녔다.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제법 농구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 게다. 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농구를 제법 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퀴어여성게임즈를 만나기 전까지는. 2018년 여름의 입구에서 나는 종종 동네 친구와 한강에 농구를 하러 다녔다. 친구는 신발장에 조던 농구화가 몇 켤레나 있지만 야외 코트 같은 거친 바닥에서 조던을 신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러면서 내 기울어진 슛 자세에 잔소리하며 ‘슬램덩크’ 명대사를 인용하는 사람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농구를 해 본 적도 없었다. 스스로 농구를 잘한다고 착각하는 사람과 만화로 농구를 배운 사람이 저녁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한강 농구 코트에서 연습 비슷한 걸 하던 어느 날 퀴어여성게임즈 소식이 들려왔다. 어른이 된 후 같이 농구 게임을 할 여성 동료를 찾는 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일하기보다 어려운 퀘스트였기에 그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퀴어여성네트워크와 언니네트워크, 무지개행동이 공동 주최하는 퀴어여성게임즈에는 가치와 코트와 동료가 모두 갖추어진 곳으로 보였다. 나는 기필코 그곳에 가서 내 농구팀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울시 은평구민체육센터에서 열린 첫 대회에는 총 320명의 선수와 관객이 참여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연한 듯 주요 종목에서 배제하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웃통 벗은 남학우들 사이에서 깍두기 같은 존재로 농구공을 던지며 대학교를 다니고, 축구부에 들어오는 여사원을 언제나 (매니저로서) 환영한다는 전사 메일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던 내게 그날의 풍경은 충격과 기쁨 그 자체였다. 체육관 한가운데, 가장자리, 관객석 할 것 없이 온통 우리 차지였다. 우리가 주인공이었다.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관계없이 오직 함께 스포츠를 즐길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서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사람들을 보는 감동이란! 나는 그곳에서 내 팀을 찾는 건 물론 다음 대회에서 선수로 참여하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을 품게 됐다.
그렇게 나는 내 농구팀을 만났고, 매주 일요일 오후 농구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농구를 해왔는지 알게 됐다. 팀플레이를 배웠고 수없이 패하고 또 패하면서도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손가락 부상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됐다. 이 모든 게 퀴어여성게임즈 때문이다. 그때 퀴어여성게임즈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삶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두 번째로 열린 2019 퀴어여성게임즈에는 총 500명이 참여했다. 나는 3대 3 농구에 선수로 참가했고, 내 조카는 계주 선수로 뛰었고, 한때 풋살을 함께 했던 팀은 결승에 올랐고, 내 친구는 관객석에 있었다. 한 번씩 교류전을 하며 얼굴을 익힌 다른 농구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곳이 퀴어여성게임즈다? 반가움과 내적 친밀감이 팝콘처럼 튀어 오른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반가운 사람을 몽땅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즐거운 놀이를 한바탕하고 다음 해를 기약하며 기쁜 마음으로 헤어지는 것. 아니 혹시 이것은…명절?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어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라는 사전적 의미를 보면 더더욱 퀴어여성게임즈가 우리의 명절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차별은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이토록 즐겁고 가치 있는 퀴어여성게임즈의 시작은 마땅한 축복과 응원으로 가득했다’라는 문장이 처음에 오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인종, 성수소자 등 온갖 차별에 빠짐없이 선두를 다투는 민족 아닌가. 2017년 퀴어여성네트워크는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를 열기 위해 동대문구 체육관을 대관했다가 돌연 취소 통보를 받았다. 허가를 내줬던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 측이 ‘민원이 들어온다’ ‘왜 성소수자 행사라고 말해주지 않았냐’며 ‘천장 공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관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그래, 공공기관이 이 정도 차별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대한민국의 참맛이지. 그래도 퀴어여성네트워크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하여 2022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한 대관 취소는 성적 지향 차별로서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고, 따라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한 것은 대한민국의 감칠맛이라는 점에서 희망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판결이 체육관 대관 신청 부당 취소 후 4년 8개월 만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1심에서는 패소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대법원의 판결에 굴복하지 않고 동대문구가 항고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라는 장금이는 단숨에 한류 원조 맛집이 되지만 차별 맛이 나서 차별이라고 하는데 그걸 인정받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항의하는 사람들이 나가떨어지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차별받는 사람들이나 애간장이 녹도록 억울하지, 차별하는 사람들이 서두를 게 뭐가 있겠는가? 아무래도 차별의 맛은 너무 쓰다, 퉤퉤퉤.
그러니까 10월 첫째 주말에 만나
퀴어여성네트워크 활동가 송정윤씨는 "반대와 차별에 부딪히면서도 어떻게든 행사를 진행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말한다. 공을 던지지 않으면 게임을 시작할 수 없듯이,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듯이, 그들은 훌쩍 시작하고 팔짝 이겼다. 그들의 승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아, 됐고 차별이라고요"라고 말할 용기를 배운다. "니들이 뭐라 하든 우리는 모여서 즐겁게 놀아버릴 거다"라는 배짱을 배운다.
우리는 공을 던지지 않을 수 있고, 공간을 만들지 않을 수 있고, 슛을 던지지 않을 수 있고, 리바운드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는 쪽을 택했다. 손가락이 꺾일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으며, 민망해질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하는 쪽을 택했다. 무언가를 하는 쪽이 하지 않는 쪽보다 훨씬 살아있는 기분이니까.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취급당할 뿐이니까. ‘그곳’에서 함께 함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힘을 얻게 될 테니까. 그 힘으로 우리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일단 10월 2일 일요일에 마포아트센터 체육관에서 만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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