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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두부공장 횡령 피의자의 지친 삶

입력
2022.09.14 19:00
25면

편집자주

17년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한 두부공장 老관리인 착복사건
우여곡절 끝 공소장 작성했지만
그의 굴곡진 삶까진 담지 못해

두부공장 관리자의 업무상 횡령 사건이었다. 공장이라고 하지만 종업원 2~3명이 매일 새벽 만든 두부를 전통시장 노점상에 납품하는 작은 가게다. 30년 넘게 그 공장에서 일해 온 피의자는 두부를 만드는 일부터 납품, 수금까지 그 공장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는데, 손가락 하나가 없는 사람이었다. 시장 상인들에게 수금한 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착복한 사실이 발각되었고, 결국 그는 구속되어 검사 앞에 왔다.

흔한, 공장 관리인의 업무상 횡령 사건인데, 검사는 난관에 부딪쳐 있었다. 횡령 사건에서는 무엇보다 언제 얼마를 어떻게 횡령했는지, 즉 횡령금의 특정이 중요한데, 이렇다 할 회계시스템 없이 피의자가 젖은 손으로 대충 써온 수기 장부에만 의존해서는 도무지 횡령금을 특정할 수 없었다. 이 거래처에서 수금한 금액은 저 거래처 미수금에 돌려 막고, 저 거래처 수금액 중 일부는 또 급하게 공장 물품 사는데 써 버리기도 해서, 도무지 장부 자체만으로는 정리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이 복잡한 두부의 납품과 수금 시스템, 돌려막기 장부의 흐름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피의자인데, 그는 경찰에서부터 입을 굳게 다물고 사실상 묵비권을 행사하는 중이었다. 그가 두부 대금을 빼돌려 아들 결혼자금으로 썼다는 것이 뻔하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횡령의 일시와 장소 금액을 특정하지 않고서는 그를 기소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검사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두부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횡령금의 특정은 당신의 책임범위를 명확히 해서 억울한 부분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득에도 꿈쩍 않던 그가 마침내 말문을 연 것은 그때다. 두부를 콩으로 만드는지 팥으로 만드는지도 모를 것 같은 검사의 얼굴을 잠시 보더니, 그는 두부의 제작 공정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매일같이 새벽 2시부터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납품까지 마치는 일을 도맡아 해 왔다고 설명하는 그의 눈빛에 어떤 자부심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잘린 손가락 이야기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날, 두부공장에서 일하다가 다친 손가락, 제대로 된 치료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진물이 흐르는 손가락을 싸맨 상태로 두부를 만들어야 했던 날들, 청춘과 손가락을 바쳐 일해 온 공장이 어떻게 그의 삶과 엉겨왔는지, 마침내 두부공장과 그의 삶을 따로 생각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돌아보니 아들 결혼자금조차 마련하지 못한 쓸쓸한 노년이 당도해 있었노라고 그는 말했다.

긴 이야기를 마친 그는,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의 행위는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한다'는 검사의 설명에 선선히 동의했다. 최선의 방식으로 횡령의 일시와 금액을 특정해 보았다고 검사가 내미는 표를 쓱 보고는 이의가 없다고 말했다. 마침내 횡령액으로 특정된 금액은 사실보다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듯 보였다.

범죄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법률상 횡령죄는 횡령의 일시와 장소, 금액과 방법을 특정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구성요소들은 범죄일람표라는 일목요연한 표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란 언제나 누군가의 삶에서 빚어지고, 삶이라는 뜨거운 것에는 법률가가 미처 표에 담지 못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갓 나온 두부의 뜨거운 김으로 늘 젖어 있던 그의 장화 속과 비어버린 손가락 자리, 결국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노년 같은 것이 그의 횡령 범죄 안에는 있다.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담아 형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법률가의 역할이어서 검사는 늘 어느 한 편 빚을 지고 있는 마음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공소장에 첨부될 매끈한 범죄일람표를 뽑으며 소소히 생각해 본다.

정명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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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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