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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떨치지 못한 '실리콘밸리 열병'... 서울시청 이 과장이 던진 승부수는?

입력
2022.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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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을 떠나 스타트업으로 간 세 사람]
①서기관 출신 이원강 XL8 한국법인장

편집자주

지금은 '대이직의 시대'입니다. 평생 한 곳의 직장만 다니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제2·제3의 인생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죠. 여기 평생근속이 보장되는 공무원, 공공기관 연구원을 마다하고, 실력만이 살아남는 정글, 스타트업으로 뛰어든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왜 이런 무모한(?) 선택을 했고, 어디에 꽂혀서 안정을 버리고 도전을 택한 걸까요? 한국일보가 만나봤습니다.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 배우한 기자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 배우한 기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사로 일할 때 실리콘밸리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나도 이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다,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인공지능(AI)으로 영상 콘텐츠 언어를 번역하는 기술을 보유한 미국 스타트업 엑스엘에이트(XL8). 이 회사의 한국 책임자인 이원강(43) 법인장 이력은 좀 특별하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사무관·서기관으로 일한 정통관료 출신. 그의 전 직함은 바로 서울시 버스정책과장이었다.

부이사관(3급) 승진을 목전에 둔 잘나가던 공무원은 왜 갑자기 서울시청을 떠나 소규모 스타트업으로 향했을까? 이 법인장을 만나 공직을 천직으로 여기던 '천생 공무원'이 공직 세계의 반대쪽 세상으로 떠나기까지의 숨겨진 얘기를 들어 봤다.

다음은 이원강 법인장과의 일문일답.

-공무원이 되기 전, 어떤 공직상을 꿈꿨나요?

"젊은 날의 이원강은 정부가 대한민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동시에 나도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실제 서울시에서 공직 생활을 해보니 사실이었고 나름 적응도 잘 했습니다. 좋은 공무원이 되려고 노력했죠.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픈 동생을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안정적인 삶도 원했죠. 그런데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었어요. 1970, 80년대에는 정부 주도로 사회 변화가 이뤄졌다면 제가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민간으로 변혁의 헤게모니가 이동하고 있음을 느꼈어요. 정부 역할은 점점 민간을 지원하는 것에 머무는 쪽으로 바뀌었죠."

-2019년 외교부로 파견 가서 샌프란시스코 영사로 일하셨더군요.

"영사 재직 중 실리콘밸리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서울시에 복귀했을 때 실리콘밸리의 장점을 서울시에 어떻게 이식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 세계를 알아가다 보니, 자기만의 비전을 갖고 기술로 세상을 바꾸고 부도 창출하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게 정말 부러웠어요. 예전엔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되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의 길이었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내고 있더더군요."

-15년간 몸 담은 서울시를 떠나는 게 두렵지 않았나요?

"처음엔 서울시로 돌아가 스타트업 경험을 할 수 있는 민간근무휴직제도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서울시도 제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고, 부이사관 승진도 2, 3년 앞둔 시점이었어요. 사표 쓴다는 건 너무 두려웠어요. 송충이가 솔잎 먹고 큰다고 한번도 '민간 물'을 먹은 적도 없었고, 공무원으로서 만족감도 컸기 때문이죠. 잘못하다 손가락 빠는 실직자 되는 거 아닌가 걱정도 했습니다."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 주요 이력

2005년 49회 행시 합격
2008년 서울시 사무관
2017년 인사혁신처, 청와대 파견
2018년 서울시 평가담당관
2019년 샌프란시스코 영사
2022년 서울시 버스정책과장
2022년 4월~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

-이직 결심을 알렸을 때, 주변 반응은 어떻던가요?

"아내에게 말했죠. '무조건 잘 되고 무조건 행복하진 않을 거야. 근데 도전하고 싶어.' 그랬더니 아내가 등짝 몇 번 때린 뒤 허락했어요. '가라. 안 되면 한 달에 200만원은 벌어와.' 순간 군대에서 따뒀던 버스 면허가 떠올랐어요.(실패하면 버스 운전을 해야겠다)"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양재 AI 허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양재 AI 허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미국 현지에 본사가 있는 AI 번역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실리콘밸리 영사 시절 한인 엔지니어 모임 K-그룹 대표였던 정영훈 현 XL8 대표를 만나게 됐어요.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유니콘(자산규모 10억달러 이상)이 되는 기업들을 보니 몰로코나 센드버드처럼 주로 AI 기반이거나 기업간 거래(B2B) 기업들이 많았어요. XL8도 인공지능 기술을 앞세운 B2B 기업이었고, 젊고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모인 기업이라 선택했습니다."

-공무원 생활과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공무원은 모든 업무가 정해져 있어요. 업무 분장표에 따라 하는 일이 딱 주어져 있고, 전임자가 하던 일을 읽어보는 데서 업무가 시작되죠. 특히 직업공무원, 속칭 늘공('늘 공무원'의 줄임말)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거나 홍수, 감염병 등 터지는 일 막기에 급급하죠. 그런데 스타트업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휴가는 언제 얼마나 갈지, 월급은 며칠 날 보낼지 하나하나 제가 다 정해야 해요."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쌓고 싶은지 궁금하군요.

"일단은 인생 2모작에 최선 다하고 싶어요. 어떤 열매가 열릴 지 모르지만. 이 업계에서 최소 10년은 버티는 게 목표입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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