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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중독자'의 천국... 벤처로 떠난 국책기관 연구원

입력
2022.09.19 11:00
수정
2022.09.1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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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을 떠나 스타트업으로 간 세 사람]
③ETRI 출신 모상현 퓨처플레이 수석심사역

편집자주

지금은 '대이직의 시대'입니다. 평생 한 곳의 직장만 다니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제2·제3의 인생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죠. 여기 평생근속이 보장되는 공무원, 공공기관 연구원을 마다하고, 실력만이 살아남는 정글, 스타트업으로 뛰어든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왜 이런 무모한(?) 선택을 했고, 어디에 꽂혀서 안정을 버리고 도전을 택한 걸까요? 한국일보가 만나봤습니다.

모상현 퓨처플레이 심사역이 8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모상현 퓨처플레이 심사역이 8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장중독자'들이에요. 내가 잘하면 나도 성장하고 회사도 성장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 중에서도 수준급의 연구 인력과 높은 급여를 자랑하는 곳이다. 국가 과제를 연구한다는 자부심, 자율적인 연구 환경 덕에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대기업을 마다하고 ETRI를 선택하는 석·박사들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트업 겸 액셀러레이터(AC·창업기업에 투자하고 보육하는 회사) 퓨처플레이의 모상현(39) 수석심사역도 2008년 ETRI에 입사해 만족스러운 연구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연구원 생활 10년차 스타트업에 파견 근무를 갔던 것을 계기로 그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직업은 '국책기관 연구원'에서 '벤처 심사역'으로 바뀌었다. 짧은 스타트업 파견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했기에,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곳을 과감하게 떠날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다음은 모상현 수석심사역과의 일문일답.

-ETRI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해 삼성전자나 SK텔레콤에 입사하는 것도 가능했어요. 하지만 ETRI는 대기업에 비해 연구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으면서도 당시로선 대기업과 연봉 차이도 크지 않았죠."

-ETRI 연구원 생활은 어떠셨나요?

"13년간 ETRI에 있었어요. 3년 단위로 연구 과제를 수행했는데, 2년간은 연구를 하고 나머지 1년은 새로운 과제를 기획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고, 행정적 업무도 생각보다 많았어요.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았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업무가 더 몰리곤 했죠."

-연구원 시절 스타트업을 경험해볼 기회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2018년 ETRI 연구원 신분으로 대학 선배가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일한 게 이직의 계기가 됐어요. 처음엔 아예 창업 멤버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스타트업을 하나도 몰라 두려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당시 연구원 생활도 10년차에 접어든데다, 매너리즘에 빠져있었어요. 그러다 ETRI에 연구인력 현장지원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민간 현장을 경험할 수 있고, ETRI에서 인건비 70%를 보조해주니 윈-윈(win-win)이었습니다. 그렇게 실제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니 동기부여가 확실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죠."

모상현 퓨처플레이 수석심사역 주요 이력

2008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입사
2018~2020년 레이더 관련 스타트업 비트센싱 파견
2021년 6월~ 퓨처플레이 수석심사역

-투자를 업으로 삼는 기술 전문 심사역으로 변신했습니다.

"처음에는 지인과 함께 창업도 고민했습니다. 반도체 소재 쪽 아이템을 구상했고, 벤처캐피탈이나 애널리스트들에게 시장성 검토도 받았죠. 그런데 기술 자체가 너무 시장성을 앞서간다고 판단해 창업은 접었습니다. 이후에도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됐어요. 지인들에게 소액의 엔젤투자를 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게 적성에 맞다 싶었죠. 그런데 벤처캐피탈의 심사역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았습니다. 투자 경력이 없고 나이가 많다는 게 문제가 됐어요. 그래서 작년 5월 ETRI가 출자한 기술지주회사 ETRI 홀딩스에 우선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입사한 첫째주에 퓨처플레이로부터 기술 분야 심사역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본격적으로 투자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모상현 퓨차플레이 심사역. 왕태석 선임기자

모상현 퓨차플레이 심사역. 왕태석 선임기자

-왜 퓨처플레이를 선택했나요?

"퓨처플레이는 ETRI 연구원 시절 몸담았던 스타트업에 투자한 회사였는데, 그때부터 역량이 있는 액셀러레이터라고 여겼습니다.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사업 아이템이 발전하는 걸 직접 눈으로 목격했었죠."

-공기업과 현재 일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공공기관은 과정을 중시하고, 사고를 치면 안 되는 안정적인 조직문화가 있죠. 그러다 보면 성장이 뒷전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스타트업은 효율과 생산성에 모든 걸 집중해요. 제가 속한 퓨처플레이는 성장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장중독자'들이에요. 내가 잘하면 나도 성장하고 회사도 성장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죠. 성과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고요. 그러다 보니 모두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려 한다는 점이 공공기관과는 큰 차이입니다."

-앞으로는 어떤 경력을 쌓고 싶은가요?

"처음 이곳에 입사할 때 면접관들 앞에서 '나만의 투자회사 만들겠다'는 패기 어린 포부를 밝혔었습니다. 이젠 목표 달성을 위해 퓨처플레이를 지렛대로 삼고 싶어요."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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