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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이 톱10에 왜 나와?...'오겜'이 알고리즘까지 바꿨다

입력
2022.09.14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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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겜' 공개 1년, OTT·할리우드 산업 지각 변동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 제작국 점유율 두 배 상승
통속 주말극까지 글로벌 인기
할리우드 한국 이야기 다룬 드라마 직접 제작
"오겜' 후 한국어 대사 장벽 낮아져"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에서 단단(이세희·왼쪽)은 가정교사로 영국(지현우)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와 사랑을 키운다. 국내에서 Z세대의 환대를 받지 못한 이 주말극을 해외 시청자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발굴했고, 요즘 뒤늦게 인기다. '오징어 게임' 성공 후 한국 드라마 소비 알고리즘이 크게 다양해진 여파다. KBS 제공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에서 단단(이세희·왼쪽)은 가정교사로 영국(지현우)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와 사랑을 키운다. 국내에서 Z세대의 환대를 받지 못한 이 주말극을 해외 시청자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발굴했고, 요즘 뒤늦게 인기다. '오징어 게임' 성공 후 한국 드라마 소비 알고리즘이 크게 다양해진 여파다. KBS 제공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감독상 등을 수상한 '오징어 게임'이 K콘텐츠 전반에 미친 영향력은 막강하다. '오징이 게임'이 공개된 뒤 넷플릭스 내 인기 콘텐츠의 한국 점유율이 두 배 이상 뛴 것으로 파악됐다. 다양하게 노출된 한국 콘텐츠를 해외 시청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찾고 있고, 세계 대중문화 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는 '한국적 이야기' 발굴에 팔을 걷었다. 지난해 9월 17일 공개돼 최초의 기록을 꾸준히 새로 쓰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드라마가 된 '오징어 게임'이 일군 변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영어 더빙판 성우와 제작진. 버뱅크=연합뉴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영어 더빙판 성우와 제작진. 버뱅크=연합뉴스


우영우보다 단단이... 그 뒤에 '오겜' 있다

올 추석 연휴에 해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가장 주목받은 '한국인'은 영우(박은빈)가 아닌 단단(이세희)이었다.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단단이 주인공인 KBS2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는 12일 기준 넷플릭스 영어·비영어 통틀어 드라마 부문 6위에 올랐다. 한국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순위다. '신사와 아가씨'는 추석 연휴가 시작된 9일부터 나흘 내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보다 더 많은 시간 해외에서 재생됐다. 3월 종방한 '신사와 아가씨'는 아이 셋을 홀로 키우는 재벌 회장 이영국(지현우)과 열네 살 연하 단단의 사랑을 다룬 통속극이다. 남북 국경을 뛰어넘은 세기의 로맨스('사랑의 불시착'·2019)도 없고 이민호 같은 한류 스타도 나오지 않는다. 국내에서 젊은 세대의 환대를 받지 못했던 이 드라마가 지난달 21일 해외 넷플릭스에 풀린 뒤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해외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입주 교사 설정이 기생충과 닮았다' '내가 본 최고의 한국 드라마'란 평이 영어로 줄줄이 올라왔다. OTT를 통해 다양한 한국 드라마가 노출되자 사용자 취향을 기반으로 한 추천 알고리즘이 한국의 주말극까지 찾아보게 만든 것이다.

이 같은 한국 콘텐츠의 파급력은 단연 오징어 게임이 일으킨 지각 변동의 결과다. 넷플릭스 전문 블로그('왓츠 온 넷플릭스')를 보면, 지난해 4분기 인기 콘텐츠 제작국 점유율 순위에서 한국(11.87%)은 미국(58.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기 전 지난해 2분기(4.49%·5위)보다 점유율이 두 배 이상 오른 수치다.

한국계 미국인 캐시 박 홍이 쓴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 표지. 이민자의 삶을 다룬 이 원작을 브래드 피트가 운영하는 A24가 드라마로 제작한다.

한국계 미국인 캐시 박 홍이 쓴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 표지. 이민자의 삶을 다룬 이 원작을 브래드 피트가 운영하는 A24가 드라마로 제작한다.


美 시장이 '우영우'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 주목한 이유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계기로 할리우드는 '1인치(자막)의 장벽'을 직접 허물고 있다. 영화 '미나리' 제작사인 A24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캐시 박 홍이 쓴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를 원작으로 동명의 드라마를, 미국 유명 OTT인 훌루는 '아메리칸 서울'을 잇따라 제작하고 있다. 모두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다룬 내용이다. 애플TV+는 재일조선인 4대의 이민사를 깊숙이 파고든 '파친코' 시즌2 제작에 착수했다. '아메리칸 서울'을 기획한 이동훈 엔터미디어픽쳐스 대표는 "'오징어 게임' 후 한국어 대사와 한국적 이야기에 대한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시아·태평양계가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 것도 이런 흐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방송영상콘텐츠마켓(BCWW)에 참석한 애덤 스타인먼 워너브러더스 포맷 개발 파트 부사장은 "'오징어 게임'으로 삶의 일부가 된 한국 콘텐츠 덕에 난 햄버거보다 LA갈비를 더 많이 먹는다"며 "예전엔 '굿 닥터'처럼 한국 드라마를 미국 시장에 맞게 각색해 리메이크하려 했지만 요즘엔 진짜 한국 이야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주목하고 있는 콘텐츠는 '우영우'와 KBS1 교양프로그램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다. 모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존을 다룬 콘텐츠다. 심두보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나의 해방일지' 등 한국 콘텐츠를 통해 해외 시청자들은 자본주의의 그늘 등 현실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타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지렛대로 활용한다"고 '오징어 게임' 후 거세진 한류의 인기 원인을 진단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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