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때리는 미국이 '마이크론' 육성에 나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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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4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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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대중 반도체 견제가 예사롭지 않다. 사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 반도체 견제는 동적 견제(dynamic control)에 가까웠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도 중국을 최대 시장으로 삼고 있는 만큼 미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선에서 대중 견제를 모색했던 것이다. 당장의 최첨단 기술은 안 되지만 미국이 더 나은 기술을 확보하면, 일정 격차를 유지하는 선에서 중국에 일부 기술을 허용하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견제 기조에 변화가 느껴진다. 정적 견제(static control)로의 변화다. 미국의 견제 목표는 더 이상 중국과의 격차 유지가 아니라 현 수준에서 중국의 발전을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에 한해서는 중국의 발전을 막고 중국이 해외에 더욱 의존하도록 만든다는 전략이다.

지난 7월 블룸버그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SMIC가 7나노(㎚) 칩을 생산했다는 기사가 나오자 미국 정부는 당장 대응 조치를 취했다. 램리서치(Lam Research), KLA,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 등 미국 장비회사들에 서한을 보내 14나노 미만 장비의 대중 수출 시 상무부 허가를 받도록 했다. 사실상 수출 금지다. 지난달 3일 로이터는 낸드 메모리 관련 장비의 대중 수출도 통제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배경에는 중국 양쯔강메모리테크놀러지(YMTC)의 부상이 있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들과 직접적인 경쟁보다는 주로 반도체 관련 장비를 수출하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의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기업들이 불만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미국 내 전문가와 업계 등 여기저기서 듣는다. 현재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은 정부가 아닌 미 의회가 주도하고 있다. 선명성이 강조되는 중간선거 국면에서 민주·공화 가릴 것 없이 초당적으로 강한 반중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불평하면 그 지점을 더 때린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문제는 최근 시행되는 미국의 견제 정책이 특정 기업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중국 전체에 대한 통제라는 점이다. 자칫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이전 트럼프 정부와 다른 점은 독자적으로 수출통제 기업 리스트(entity list)를 활용한 특정 기업에 대한 제재보다, 우방국과의 연대를 통해 '우려 국가(country of concern)' 전체에 대한 제재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 내 많은 투자를 이미 진행한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중국 내 우리 사업이 메모리 반도체에 치중된 가운데 일부에서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압도적 비중이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도 당장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의 현재 생산은 막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 내에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위한 투자 확대가 일어나는 것을 전면적으로 막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보이는 자국 우선주의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미국은 대중 견제를 이유로 한국 기업들의 업그레이드는 막으면서도, 메모리 분야 경쟁자인 한국 기업의 경쟁자이자 미국 업체인 마이크론(Micron Technology)의 시장 지배력을 키울 수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만큼은 미국의 정책적 방향성을 정확히 읽고 정부는 미리 협상에 나서야 하며 기업은 경영 방향을 재검토할 때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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