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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계열사도 없는 최태원 회장, 한식 산업화에 진심인 까닭은

입력
2022.09.12 15:56
수정
2022.09.12 16:46
11면

유튜브, TV방송서 음식 전문가 식견 보여
"산업적 접근 방법 미흡, 산업화 잘 안됐다" 쓴소리도
식품업과 무관한 경영인 이례적 행보

최태원 SK 회장이 9일 공개된 유튜브 '삼프로 TV'에 출연해 한식 산업화를 설명하고 있다. 삼프로TV 캡처

최태원 SK 회장이 9일 공개된 유튜브 '삼프로 TV'에 출연해 한식 산업화를 설명하고 있다. 삼프로TV 캡처


"한식 산업화가 국가 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추석 연휴 때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강조한 발언이다. 최 회장은 최근 찾는 자리마다 한식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한 공중파 TV 방송 프로그램에선 공동 진행을 맡으며 음식 전문가들과 다양한 한식 정보를 주고받고 있고,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음식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남다른 식견을 드러내고 있다. 식품 계열사를 따로 운영하지 않는 대기업 오너로는 이례적 행보다. BBC(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반도체)로 상징되는 SK그룹 회장이 언뜻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식 산업화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한식 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

'2022 해외한류 실태조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2 해외한류 실태조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최 회장은 9일 공개된 삼프로TV 영상에서 "대한상의에서 국가발전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올해 주제를 한식 산업화로 놓고 많은 전문가들과 발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면서 민간 차원에서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SBS 토크쇼 '식자회담'에서 사회를 맡은 이유를 이처럼 설명했다.

최 회장은 "일단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산업화를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알아야 돼 많은 전문가들을 초빙해 방법론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선 최 회장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우리 경제에 한식 산업화가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식품 시장의 규모는 반도체 시장(약 6,000억 달러)의 13배가 넘는 8조 달러 규모로, 2024년에는 9조 달러를 넘어선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특히 한식은 영화, K-POP 등을 제치고 인기도와 브랜드 파워 분야 1위(2022 해외한류실태 조사 결과)였을 만큼 시장 확대 전망도 밝다.

문제는 한식 세계화는 오래전부터 추진됐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식 세계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잦은 사업 변경과 홍보, 이벤트 중심의 전략 등으로 매번 한계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한식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종합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 회장은 "제대로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려면 음식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산업화가 돼야 한다"며 "한식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유명 셰프나 기업의 개인기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산업적 측면으로 볼 땐 접근 방법이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부친 최종현 선대회장, 한식에 높은 관심 보여

최태원 SK회장이 지난달 25일 경기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열린 ‘이천포럼 2022’ 마무리 세션에 참석, 임직원들과 ESG 경영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제공

최태원 SK회장이 지난달 25일 경기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열린 ‘이천포럼 2022’ 마무리 세션에 참석, 임직원들과 ESG 경영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제공


사실 최 회장에게 한식 산업화는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사안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16일 방송된 식자회담 1화에서 "미국 유학시절 일본 음식인 날생선을 서양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문화 등이 접목되면서 성공적인 세계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회상하며 "산업화 아이디어와 이를 지원할 문화가 갖춰진다면 한식도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이러한 한식에 대한 관심은 선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최 선대회장은 '한식 표준화'에 앞장서며 미국 유학 시절 김치 발효 논문을 썼고, "계절에 상관없이 맛이 똑같은 최고의 김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며 1989년에는 워커힐 김치연구소를 세우기도 했다. 이곳에서 5년의 개발을 통해 탄생한 '수펙스(SUPEX) 김치'는 남북정상회담, 다보스 포럼 등 국내외 행사에 쓰이며 김치의 우수성을 알렸다.



SK, 대체식품 시장 본격 진출?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세포 배양으로 만든 연어 요리. 최 회장 SNS 캡처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세포 배양으로 만든 연어 요리. 최 회장 SNS 캡처


최 회장은 한식 산업화에 푸드테크(Food Tech)라는 미래 기술을 입히는 시도도 주목하고 있다. 식품 산업에 4차 산업기술을 적용해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의도에서다. 예컨대 세포 배양 기술을 이용해 기존 식품을 대체하기도 하고, 곤충 등을 활용한 식품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자신의 SNS에 세포를 추출해 배양해서 만든 연어살을 올리며 "물고기의 생명을 뺏지 않고도 지속가능한 맛과 영양은 똑같은 생선을 먹을 수 있다면 인간의 삶과 지구 환경은 어떻게 달라질까요"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에는 대체 유제품 기업 퍼펙트데이가 만든 아이스크림 시식 후기를 올리는 등 대체식품 시장의 가능성에 관심을 보였다. SK는 이런 최 회장의 뜻을 받아 퍼펙트데이, 네이처스파인드, 미트리스팜 등 대체식품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의 행보로 한식의 잠재력이 알려진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며 "최 회장이 제시한 기술 개발, 유통 혁신, 맛의 표준화, 스토리텔링 개발 등이 하나씩 해결된다면 한식을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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