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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상인의 수향... 주판에 인생 셈법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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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와 쑤저우의 경계에 전산호(淀山湖)가 있다. 중국의 3대 담수호인 태호(太湖)와 황포강 수계를 연결하고 있다. 사방으로 물줄기가 뻗어나간다. 동쪽으로 흘러가는 전포하(淀浦河)를 따라 형성된 수향이 있다. 상하이 서쪽 끝에 위치한 주가각(朱家角)이다. 남송 말기인 13세기부터 마을이 형성됐다. 800년 역사를 지닌 고진이다. 명나라 중기에 이르러 사통팔달 수운 덕분에 상업이 발달했다. 21세기 상하이는 코앞까지 지하철을 연결했다. 공항과 기차역이 있는 훙차오에서 17호선을 타면 30분 거리다.
1번 출구에서 북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도랑이 나온다. 도랑을 따라 동쪽으로 들어간다. 따로 문이 없고 어디부터 수향인지 알 필요도 없다. 사방이 입구다. 봉긋하게 도드라진 다리가 보이고 교통수단인 오봉선(烏篷船)이 떠다니면 그냥 수향 분위기에 젖는다. 6명 정원에 150위안(약 2만7,000원)이다. 인당 25위안이고 6명이 모이면 출발한다. 20분 걸려 마을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다. 비가 많은 지역이라 대쪽으로 지붕을 덮고 주로 검은색을 칠했다. 까마귀와는 상관없다. 노 젓는 소리 들릴까 싶어 귀를 쫑긋한다. 사공이 휘젓는 배의 여운을 따라간다.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니 돌길이 반질반질하다. 도랑 왼쪽 조하가(漕河街)를 걷는다. 곡물을 수송하던 수로였다는 흔적이다. 명나라 중기부터 쌀과 기름, 포목과 금융이 모여들어 ‘3리에 이르는 거리에 점포가 천 개’에 달했다는 명성을 얻었다. 천연의 수로 덕분에 상업 중심지였다. 청나라 말기까지 상하이와 저장 일대 쌀값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민이 늘자 도랑을 넘나드는 다리도 많이 생겼다. 모두 36개나 된다.
다리마다 생김새나 사연도 다 다르다. 조하가에 처음 나타난 다리는 척가교(戚家橋)다. 다리 위에서 보니 멀리 조그마한 다리가 보인다. 이름이 사뭇 익숙하다. 항왜(抗倭) 영웅이자 만리장성 공심적대(空心敵臺)를 건축한 척계광 장군이 떠오른다. 명나라 중기 척가군의 행군 노선이었다. 군대 이동을 위해 벽돌과 돌, 나무를 혼합해 다리를 세웠다. 스무 걸음도 되지 않는 평탄한 다리다. 탄탄하게 지어 지금도 주민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다.
척가교를 보고 다리에서 내려오니 성황묘교(城隍廟橋)다. 척가교까지 이동하기가 불편해 나중에 지었다. 바로 옆에 성황묘가 있다. 성황묘는 도성의 수호신을 봉공하는 사당이다. 주가각은 명나라 시대부터 칭푸현(青浦縣) 관할이었다. 현에 성황묘가 3곳이었다. 그중 하나를 1763년 청나라 건륭제 시대에 지금 위치로 옮겨왔다. 성황묘는 민간신앙과 도교가 혼재돼 있다. 도교를 약간 안다고 해도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민간신앙이 끼어들어 수호신도 지방마다 다르다. 가끔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향로 뒤로 대전인 성황전이 보인다. 마당 나무에 주렁주렁 붉은 리본이 매달려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소원을 빈다. 지붕에 용이 포효하고 복록수(福祿壽)를 주관하는 삼성신이 있다. 오어 4마리에 초록색을 칠했는데 칙칙한 지붕을 산뜻하게 만들고 있다.
용마루가 이중으로 보인다. 아래는 머리만 칠했고 위는 꼬리까지 온몸을 칠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신비한 분위기다. 추녀 양쪽에 관우와 장비가 애마를 타고 질주하고 있다. 늠름한 인상까지 세밀하게 조각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신령스러운 공간에 리본 하나씩 매달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정말 신기한 보물은 아래쪽에 있다. 사실 두 개의 전각이 연이어 있어 이층처럼 보인다. 앞쪽 전각에 뜬금없이 주판이 등장한다. 사당과 주판은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요즘 세상에 주판이 뭔지 모를 사람도 있을 듯하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가감승제를 위한 계산기다. 장사꾼에게 전공 필수나 다름없다. 더하기도 어려운데 나누기도 한다고? 자세히 보니 나름 뜻이 있다.
위칸에 있는 알 두 개는 하나가 5다. 아래칸의 다섯 개는 하나가 1이다. 주판 열일곱 줄에 산수가 아닌 인생의 셈법이 숨어있다. 왼쪽 세 줄은 모두 6이다. 합하면 18이다. 인생 육십갑자에서 모두 18개의 고비가 있다는 말이다. 어려운 고비를 흐르는 물처럼 순리대로 헤쳐 나가라는 뜻이다. 이어서 0이 나오고 1부터 9까지, 다시 0이 나온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관장하는 성황신의 장부를 상징한다. 오른쪽 세 줄은 모두 8이다. 매년 24절기를 모두 순조롭게 보내라는 뜻이다. 성황에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어서일까?
응덕효령(應德效靈) 편액이 걸려 있다. ‘덕이 있는 자에게 복을 내려준다’는 말이니 분명 영험이 있나 보다. 성황신과 부인을 봉공하고 있다. 성곽과 해자를 수호하는 신이다. 고대부터 전래된 민간신앙이다.
역사 기록은 6세기 남북조 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남사(南史)’에 괴이한 일이 잦아 왕륜이 성황신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 시대에는 국가 차원의 제례로 발전한다. 천상에서 파견한 지방관이 성황신이다. 지방마다 도성이 다르니 수호신도 다르다. 점점 소원을 구현해주는 감응왕(感應王) 역할도 맡았다. 친근하고 신령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주가각 성황신은 명나라 말기 포정사(지금의 도지사)를 역임한 심은이다. 하늘에서 파견한 인물이라 믿었다.
곁채에 이름도 낯선 사당이 있다. 하늘이 내린 장군이라는 천조맹장(天曹猛將) 편액이 심상치 않다. 성황신처럼 부부가 나란히 앉았다. 도교에서 상천왕(上天王)으로 신봉되는 유승충이다. 원나라 시대 장쑤와 안후이 일대 관리였다. 극심한 가뭄 끝에 메뚜기 공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를 격파해 백성의 신망이 두터웠다. 농작물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길래 신이 됐을까? 사후 유맹장 사당을 지었다. 청나라 옹정제가 칙령을 발표해 전국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라 했다. 백성의 마음을 꿰뚫어 통치에 이용한 까닭에 도교의 신을 다 끄집어내려면 한도 끝도 없다.
조하가를 따라가니 처마가 있는 나무다리가 나온다. 낭교(廊橋)라 부른다. 오봉선이 통과하는 여운이 돌다리보다 낫다. 바로 옆에 재부(財府)가 있다. 당나라 시대에 천상의 태백금성(太白金星)을 재신으로 삼아 저택을 지었다.
옥황상제의 측근이자 삼황오제 중 소호의 아버지라는 신화다. 손오공을 설득해 천상으로 데려오는 인물이다. 백성에게 복을 하사하는 저택이다. 삶이 힘들수록 민간신앙은 절박했다. 재부로 들어가 재신 앞에서 재물을 기원했다. 전설에 따르면 문을 지키는 신선이 몰래 입장료를 받았다. 재신이 크게 노했다. 문에 ‘재’ 자를 크게 쓰고 조그맣게 재문을 만들었다. 백발 모두 백중이다. 누구나 재문을 열고 재물을 얻는다.
태안교(泰安橋)가 나온다. 1584년 명나라 만력제 시대에 세운 돌다리다. 바로 옆에 불교 사찰인 원진선원(圓津禪院)이 있다. 1341년 원나라 시대에 세운 사찰이다. 학자와 문인의 회합 장소로 유명했다. 명나라 후기 상하이 출신 학자이자 서화가인 동기창이 주도해 32명이 공동으로 금강경을 썼다. 사찰이 소장한 보물 중 하나다. 원통보전에 ‘나가가 머무는 처소’라는 나가정처(那伽定處) 편액이 걸려 있다. 인도 신화에 나오는 뱀 신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용으로 변모했고 넓은 의미의 부처라고 하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각 안에 부처를 봉공하고 있다.
두 개의 전각이 나란하다. 야나(惹那)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 편길(遍吉)에는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이 정좌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야나는 지혜, 편길은 이치를 상징한다. 아미타불,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공하는 삼성전도 있다. 사찰 뒤에 꽤 폭이 넓은 하천이 나온다. 전산호에서 나와 황포강까지 흐르는 전포하(淀浦河)다. 조운과 상업을 위해 무수히 배가 오가던 하천이다. 부두에는 오봉선 여러 척이 정박해 있다. 오른쪽으로 방생교(放生橋)가 보인다.
다시 태안교를 건너 방생교로 간다. 주가각을 남북으로 갈라놓고 있다. 1571년 명나라 융경제 시대에 승려가 모금해 건축했다. 40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튼튼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상하이의 옛 교량 중 가장 길고 크고 높은 오공석공교(五孔石拱橋)다. 길이 70.8m, 너비 5.8m, 높이 7.4m다.
흐린 날씨에 약간씩 빗방울이 뿌린다. 유지산을 들고 사진 찍는 사람이 많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쌀을 가득 싣고 다가오는 조운선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하다. 다리를 건너 강변에서 바라보니 더욱더 웅장하다.
강변 양쪽으로 식당과 찻집, 객잔이 붐빈다. 찻집에 앉아 비를 피한다. 강가에 오성홍기가 휘날리고 있다. 인파가 있으면 어디라도 등장하는 스타벅스가 건너편에 있다. 오봉선 옆으로 용을 그린 유람선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숙박 앱을 연다. 4월 중순 일요일이라 방이 많을 줄 알았다. 하룻밤 보낼 객잔을 겨우 찾았다.
강변 북쪽은 서정가(西井街)와 동정가(東井街)가 길게 이어진다. 우물 옆에 정자가 있었던 흔적인 정정항(井亭港)이다. 골목으로 도랑이 흘러와 전포하로 합류한다. 두 거리를 가르는 지점에 영안교(永安橋)가 있다. 남쪽에 있어 남교라고 부르는데 용의 머리 부분이다. 용수교라 부를 만도 하다. 도랑 따라 올라가면 중교인 중용교(中龍橋)와 북교인 용천교(涌泉橋)가 있다. 다 묶어 정정항 삼교다. 한 마리 용이 누운 도랑이라는 표현이다. 세상에 도랑도 용이 될 줄은 몰랐다.
온갖 먹거리와 식당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물산이 풍부한 강남이다. 콩을 재료로 발효한 양념장 파는 가게가 골목의 향기를 주도한다.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장원(醬園)이 많다. 코를 타고 들어와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별의별 양념이 많다. 소고기 우육장(牛肉醬), 참깨 지마장(芝麻醬), 매운 고추 다진 타초장(剁椒醬)과 새우의 알로 만든 하자장(蝦籽醬)도 있다. 양념으로 만든 반찬도 많다. 가지, 무, 생강 등을 버무린 모습을 보니 쌀밥이 생각난다.
대나무 줄기에 고기와 곡식을 싸서 만드는 요리가 있다. 아주머니가 직접 손으로 만들고 있다. 모양으로 봐서 딱 단오절에 많이 먹는 쭝쯔(粽子)다. 쌀이나 찹쌀과 함께 돼지 살코기, 게살을 넣어 만든다. 대나무 향내가 우러난 맛이다.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할머니나 아주머니가 만든다는 뜻으로 아포쭝(阿婆粽)이라 부른다. 주가각을 대표하는 전통 요리로 하나에 6위안이다.
증류주인 오량원장(五糧原漿) 항아리가 보인다. 다섯 가지 곡식으로 빚은 원액이란 뜻이다. 58도 1근(500ml)에 50위안이니 거저다. 생수 병에 담아준다. 안주도 필요하다. 수향의 대표 안주인 주티(猪蹄)가 사방에 많다. 우리의 족발과 맛은 다르나 제조 방법은 비슷하다. 향이 좀 다를 뿐 질감이나 영양분은 다르지 않다. 하나에 40위안이다. 혼자 먹기에 많긴 해도 반으로 잘라 살 수 없다.
혼자 답사를 다니면 밥이나 반찬, 술이나 안주를 사서 숙소에서 먹기 십상이다. 예약한 객잔을 찾아간다. 방생교를 지나자마자 골목으로 좌회전해 100m가량 들어간다. ‘파란 방’이라는 란팡쯔(藍房子)인데 입구에 물고기가 잔뜩 그려져 있다. 바다를 유영해 용궁으로 들어서는 착각이 든다. 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주인은 신원을 확인하고 열쇠를 챙겨주더니 그냥 사라진다. 거실과 화장실이 침실과 구분돼 있는 방이다. 식탁이 있어 술과 안주를 펼친다. 새로운 여행지에 와서 술잔에 입 맞추고 팔 운동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날의 발품은 또 하나의 안주다. 술기운이 돌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어느새 비가 그쳤고 어두워졌다.
방생교가 축축한 기운을 닦고 불빛으로 단장했다. 땀을 씻어내고 방긋한 얼굴로 변했다. 식당과 찻집도 일제히 조명을 밝히고 있다. 비슷한 빛깔인 듯하면서도 변화무쌍하고 울긋불긋하다. 다리 윤곽도 잘 어울린다. 대낮보다 100배는 강렬한 반영이라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조심스레 다리 위로 오른다. 대도시 상하이의 수향이라 다른 지방보다 선명한 느낌이다. 양쪽을 오가며 둘러봐도 질리지 않는다. 물에 비친 빛이 자꾸 소리를 내는 듯하다. 빛은 물을 머금고 가라앉는다. 물결 따라 어디론가 흘러간다. 물과 빛을 베개 삼아 꿈나라로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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