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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고향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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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우영우로 한창 인기가 오르고 있는 연기자 박은빈씨가 곱게 손을 모으고 절하는 듯한 포즈를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올 추석 고향에 왔습니다. 여기 마음의 고향으로!” 화면이 줌아웃되고 보니, 그곳은 어느 열대 휴양지. 그가 모은 손은 요가 동작이다. 이어 “어디든 가족이 함께하는 곳 그곳이 고향”이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올 추석을 맞아 제작된 건강보조제 기업 광고로 대부분 한 번쯤 봤을 것이다.
□ 이번 추석 연휴 기간 3,017만 명이 길 위에 오른다.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수치다. 추석은 여전히 ‘민족 대이동’을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박은빈씨처럼 ‘마음의 고향’을 향해 떠난다. 휴가지에서 명절을 보내는 현상을 지칭하는 ‘콘도 차례’란 용어가 신문에 처음 등장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이다. ‘마음의 고향’을 향한 ‘귀성’도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으니, 이미 명절의 주요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 ‘성묘’라는 전통적 추석 행사를 지키고 있는 귀성객들도 명절마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수년 내 올 것이다. 조부모나 부모님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을 바탕으로 인물을 사실적으로 구현하고, 움직임이나 음성도 재현하는 가상현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덕분이다. 굳이 묘소를 찾지 않더라도 3D 헤드셋만 쓰면 어디서든지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얘기도 나눌 수 있다면 묘소 자체도 급격한 변화를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 추석의 근본적인 변화는 ‘고향’이란 개념 자체에서 시작된다.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고향도 뇌가 구성한 가상 현실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뇌는 태어난 직후부터 10~12세까지 쌓인 경험에 의해 완성된다. 고향을 ‘뇌의 기본 구조가 형성되는 환경’으로 정의한다면, 아날로그보다 ‘디지털 현실’에 더 친숙하게 성장한 10대에게는 디지털 세상이 진짜 고향으로 느껴질 것이다. 10대의 눈에는 고향을 향한 귀성 대란에 뛰어드는 부모나, 복잡한 공항과 비행기에서 부대끼며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박은빈씨가 모두 비슷한 구세대로 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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