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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어딨어?" 아내 물음에 답 못한 남편 "생환 기대했는데…"

입력
2022.09.07 17:38
수정
2022.09.07 18: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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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 만에 아내 구조되자 "집사람이에요!"
아들도 곧 생환 기대했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중학교 2학년 늦둥이 막내지만 어른스러워
구조된 아내, 아들 생사 물었지만 아직 답 못해
남편 "내가 차를 빼러 갔어야 하는데…" 침통

구조대원들이 보트를 이용해 지난 6일 오후 10시 12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류수현 기자

구조대원들이 보트를 이용해 지난 6일 오후 10시 12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류수현 기자

“우리 집사람, 집사람이에요!”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입주민 A(57)씨는 지난 6일 오후 9시 44분쯤 흙탕물로 가득 찬 지하주차장에서 아내 김모(52)씨의 얼굴이 보이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날 새벽 아내와 아들이 실종되고 난 뒤 ‘가장이 제 식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아무 말 없이 지하주차장만 목이 빠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다.

A씨는 막내 아들(15)도 곧 나올 거라는 기대에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아내를 뒤따라가지 않았다. 지하주차장 입구 난간 틈새로 고개를 내밀고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그는 이후 발견된 실종자들이 하나같이 새하얀 천에 말려 나오자,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A씨가 애타게 기다렸던 아들은 끝내 자정을 넘긴 7일 0시 35분에 실종됐던 8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발견돼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씨는 “구조된 아내한테 전화로 ‘막내랑 같이 있었지?’라고 물어보니, 통로를 찾겠다며 손을 놨다고 하더라”며 “아내가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렸다는데, 그 어린 게 탈출구를 찾으러 나섰다가 그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6일 저녁 태풍 '힌남노'의 폭우로 잠긴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소방·군 관계자들이 실종된 김모(52)씨를 구조하고 있다. 포항=서재훈 기자

6일 저녁 태풍 '힌남노'의 폭우로 잠긴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소방·군 관계자들이 실종된 김모(52)씨를 구조하고 있다. 포항=서재훈 기자

중학교 2학년인 김군은 위로 결혼한 누나가 있을 정도로, A씨 부부가 두 딸을 키우고 한참 뒤 낳은 늦둥이였다. 뒤늦게 얻은 막내라 어리광을 부릴 법도 했지만, 엄마와 아빠를 살뜰히 챙겼다고 한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닥친 6일 새벽에도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라 늦잠을 잘 수 있었지만, 차를 빼러 나가는 엄마와 아빠를 걱정해 졸린 눈을 비비며 뒤따라 나섰다. 지상에서 비를 맞으며 주차할 공간을 찾던 아빠를 두고 엄마를 따라 지하로 내려간 것도 아빠보다는 '약한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A씨의 친척은 “김군은 또래는 물론 어른들보다도 키가 크고 어른스러웠다"고 말했다.

A씨는 극적으로 생환한 아내 김씨의 병원과 막내의 시신이 안치된 또다른 병원을 오가며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A씨는 “아내가 계속 ‘막내는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데, 아직 얘기를 못 했다”며 “그날 내가 차를 빼러 갔더라면, 아내와 아들을 집에 두고 나 혼자 차를 빼러 갔더라면....”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7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W아파트 1·2차 단지 주차장에선 생존자 2명과 사망자 7명 등 총 9명이 발견됐다. 이 중 8명은 W아파트 1차 단지에서 발견됐다. 사망자 가운데 남모(71)씨와 권모(65)씨는 부부 사이로 알려졌다. 2차 단지에서는 실종자 명단에 없었던 70대 남성 안모씨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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