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폭우를 뿌린 경북 포항에서 지하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던 아파트 주민 7명이 갑자기 들어찬 물에 휩쓸려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침수 전 “차량을 지상으로 옮겨달라”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방송을 듣고 지하로 내려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하주차장이 잠기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고는 하지만, 허술한 배수ㆍ방지시스템이 낳은 인재다.
지하공간 침수로 인한 인명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도권에 기습폭우가 내린 지난달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에서는 주차장을 빠져나오지 못한 남성이 목숨을 잃었다. 2020년 7월 부산 집중호우 때에도 해운대의 한 고급호텔 지하주차장에서 시민 3명이 급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호우피해가 날 때마다 하수관거 정비, 지하방수로 건설, 제방 보강 등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각종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비만 오면 도시의 ‘거대한 하수구’가 되는 지하공간은 침수 무방비 지대라는 사실이 이번 참사로 드러났다. 피해 예방을 위한 관련 규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행정안전부의 침수 예방시설 설치 기준은 5년 이내 1회 이상 침수가 됐던 지역 중 동일피해가 예상되는 지구나 해일 위험 지구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벌칙 규정도 없다. 국토교통부 규정상 지하층 물막이 설치대상 건물도 2012년 이후 신축 건물에만 해당된다. 참사가 발생한 포항의 아파트는 1995년에 지어져 해당되지 않을 정도로 규정이 성글다.
정부는 7일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의 구축 공동주택에 대해 장기수선충당금 등을 활용해 차수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뒤늦게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부는 전국 지자체들이 지하 침수 위험지역을 어느 곳에 지정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하공간의 정확한 침수위험도를 서둘러 확인해 이를 바탕으로 지하 침수 방지 기준을 조속히 강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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