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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 속에서 14시간 사투... 두 생명 살린 천장 배관 '에어포켓'

입력
2022.09.07 20: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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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배수·배관 시설이 자연 에어포켓 형성
"추가 실종자 가능성 희박...배수·수색 병행"

6일 폭우로 잠긴 경북 포항시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소방·군 관계자들이 주민 전모씨를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폭우로 잠긴 경북 포항시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소방·군 관계자들이 주민 전모씨를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경북 포항시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에 갇힌 두 명의 생존자는 천장에 설치된 파이프 배관이 만들어 준 ‘에어 포켓’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7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높이는 약 3.5m다. 주차장 천장을 가로지르는 스프링클러, 냉난방 등 상부 배관과 천장 사이에 약 30㎝ 정도의 틈이 있는데, 이 공간이 의도치 않게 ‘자연 에어포켓’을 선사한 것이다.

전날 오후 8시 15분쯤 신고 13시간 만에 구조된 최초 생존자 전모(39)씨는 지하주차장 입구 부근 천장에 생긴 에어포켓에서 14시간을 버텼다. 구조작업에 참여한 소방 관계자는 “지하로 내려가는 주차장 입구 상층부에 안으로 움푹 들어간 채 배관이 지나가는 지점이 있다”며 “물이 유입되지 않고 공기층이 형성된 지점에서 버티다가 물이 빠지며 빛이 보이자 생존자가 스스로 밖으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물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옷을 벗고 구조를 기다린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구조된 김모(52)씨도 주차장 천장에 설치된 좁은 패널 위에 간신히 엎드린 채 버틴 것으로 알려졌다. 박치민 포항남부소방서장은 브리핑에서 “물이 갑자기 차올라 몸이 떠오를 수도 있고, 차량 등을 밟고 물이 없는 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경북 포항시 인덕동 W아파트 지하 주차장 천장을 가로지르는 배관. 주민 전모씨는 천장을 가로지르는 배관을 붙잡고 14시간을 버텼다. 나주예 기자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경북 포항시 인덕동 W아파트 지하 주차장 천장을 가로지르는 배관. 주민 전모씨는 천장을 가로지르는 배관을 붙잡고 14시간을 버텼다. 나주예 기자

취재진은 일부 배수가 이뤄진 이날 지하주차장 안을 살펴봤다. 내부는 처참했다. 약 60㎝ 높이로 흙탕물이 고여 있었고, 엔진오일, 하수구 냄새로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물에 반쯤 잠긴 차량도 다수 눈에 띄었다. 또 주차장 기둥과 벽면 곳곳에는 사람 손 모양의 진흙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에어포켓 장소로 짐작되는 파이프 배관 위 공간도 보였다. 실제 일부 공간에는 물이 닿지 않아 두 생존자도 이곳에서 배관을 붙잡은 채 구조를 기다린 것으로 추정된다.

7일 오후 경북 포항시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 모습. 배수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대부분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7일 오후 경북 포항시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 모습. 배수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대부분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소방당국은 이날 수색인력 165명을 투입해 세 차례에 걸쳐 지하주차장 및 침수 차량 66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구조대는 혹시나 차 안에 갇혀 있을 실종자 수색을 위해 차량에 페인트 스프레이를 뿌려 표시를 남기고, 트렁크를 열어 자동차 하부까지 모두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필사의 수색 작업에도 추가 실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후 6시까지 물은 85% 정도 빠졌다. 아파트 내부 전기시설 복구 작업이 병행된 터라 배수 작업은 다소 늦어졌다. 박 소장은 “현재로선 추가 실종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물을 모두 빼낸 뒤 경찰과 합동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포항=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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