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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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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행을 가면 꼭 하는 우리 가족만의 전통 아닌 전통을 꼽자면 '현지에서 엽서 쓰기'가 있다. 그날 들른 장소나 풍경이 그려진 엽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예쁜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꾹꾹 눌러 쓴 다음, 아무렇게나 마음 가는 대로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J에게, H언니에게…'
먼 곳에서 생각나는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던 마음은 사라지고 슬슬 볼펜 끝이 움직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오늘은 무엇을 했고, 식사로는 뭘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어떠하며 날씨는 어떠한지… 오늘 내가 겪은 이곳의 무엇이 좋았는지,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 당신이 생각났는지까지 적다 보면 그리움이 한 줌, 마지막 문장으로 녹아 나온다. '다음에 꼭 같이 오자.'
아마 인류 문명과 문자의 탄생부터 함께했을 원시적 형태의 표현인 편지는 이렇게 지금까지도, 가장 먼 곳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내 곁에 소환하는 매개로 작동하고 있다. 사진과 영상 통화가 아무리 발전해도 아직 감정을 담기엔 기술이 조금 부족한지, 아니면 내가 아직은 아날로그 세대의 끄트머리라 그런 것인지 엽서에 글로 담긴 텍스트를 타고 뉴욕도, 런던도, 쾰른도 다녀오곤 한다. 거대한 우편 통신망 속 가장 작은 형태에 실려 저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마음이다.
오늘 들고 온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는 타지를 여행하며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그 둥실둥실한 감정이 그대로 담긴 책이다. 북쪽 숲에 사는 곰이 '세상 끝'의 남쪽 섬에 사는, 사랑하는 새가 보고 싶어 먼 길을 떠난다. 난생 처음 떠나는 길에서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며 곰은 계속해서 편지를 쓴다. 새가 평소에 말로만 전해 주었던 풍경을 직접 보며 느끼는 놀라움, 매일같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설렘이 짧은 글 안에 꾹꾹 담겨 있다. 곰이 여행길에 만나는 다양한 풍경처럼, 이 책도 어떨 때 읽으면 글이, 또 다음 번에 읽으면 그림이, 그 다음 번에는 글 속에 담긴 곰의 감정이 먼저 다가오는 등 읽을 때마다 다른 얼굴이 보이는 점이 또 멋지다. 곰이 마침내 독수리 바위에 도착하는 대목 이후에 이 사랑스러운 곰과 새를 보며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책을 읽고 나서, 혹은 이 글을 읽고 나서 누군가에게 엽서 한 장 써 봐야겠다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토막 정보. 요즘 엽서를 보낼 때의 우표 요금은 규격 엽서 400원, 비규격 엽서 450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쁜 엽서는 비규격 크기이며 450원이면 국제 요금으로 전 세계 어디든 보낼 수 있으니, 우표 몇 장 평소에 사 두었다가 가까운 우체통에 엽서 몇 장 쏙 넣어 보는 건 어떨까? (놀랍게도 아직 곳곳에 우체통이 있으며, 우편물도 매일 수거해 가신다) 며칠 뒤면 무심코 우편함을 확인하던 친구 또는 가족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알모책방은 경기도 고양시 마두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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