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속이고 튄 것'"...법무부, 중재판정 요지서 공개

입력
2022.09.06 18: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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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at and Run"이란 표현으로 론스타 지적
론스타 외환카드 주가조작을 나타내는 표현
소수의견 "한국 정부의 부당개입 증거 없어"
법무부, 취소 신청 여부 종합적으로 검토 중

2006년 11월 1일 당시 서울 강남구 한 건물에 입주한 론스타 안내 표지판. 연합뉴스

2006년 11월 1일 당시 서울 강남구 한 건물에 입주한 론스타 안내 표지판. 연합뉴스

한국 정부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간 국제분쟁 중재판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먹고 튀는(Eat and Run)' 수준을 넘은 '속이고 튄(Cheat and Run)' 행위로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각 승인을 의도적으로 보류한 한국 금융당국의 잘못과 별개로 론스타의 약탈적 매각 행위를 분명히 지적한 것이다.

법무부는 6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와 론스타 사이의 투자자-국가 국제분쟁해결제도(ISDS) 사건에 대해 내린 판정 요지서를 공개했다. 판정 요지서는 400페이지가량의 판정문 전문을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주장, 중재판정부 판단 등을 핵심 쟁점에 따라 정리한 일종의 요약본이다. 중재판정부는 판정문 전문의 공개 금지 명령을 내렸으며, 법무부는 론스타 측과 전문 공개를 두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판정 요지서에서 한국 정부가 2억1,650만 달러(환율 1,300원 기준 2,814억 원) 배상 책임을 지게 된 '외환은행 매각가격 인하로 인한 손해'에 대한 판정부 판단이 눈에 띈다. 론스타는 2011~2012년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매각 승인 지연으로 손해를 봤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매각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맞서왔다.

판정부는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관련 형사 유죄판결 확정을 받았던 점에 비추어 보면, 소위 '먹고 튄(Eat and Run)' 비유에서 더 발전해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론스타 측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인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환카드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춘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같은 론스타의 주가조작 행위를 '속이는(Cheat) 행위'로 본 것으로, 판정부는 “이후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 지분을 더는 보유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금융당국이 매각 가격 인하를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고 지적했다.

다만 판정부는 한국 정부 역시 부당한 매각 승인 지연으로 투자보장협정의 공정·공평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 꼬집었다. 론스타가 청구한 금액(4억3,000만 달러)의 절반을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한 이유다.

특히 다수의견(3명 중 2명)은 "(한국) 금융당국은 매각가격 인하가 이뤄질 때까지 승인 심사를 보류하는 '지켜보는(Wait and See)' 정책을 취하였는데 이는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는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금융당국은 (이 같은)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매각가격 인하를 위해 노력했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중재인 한 명은 "가격 인하 압력 행위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다"며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소수 의견을 개진했다.

정부는 판정부가 론스타의 주가조작 행위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상 판정 취소 신청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중재판정 취소 신청과 관련한 질의에 “(취소 신청 인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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