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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살인의 방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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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경기 수원의 41세 A씨. 경기 시흥의 54세 B씨. 대구의 32세 C씨. 사는 곳도 나이도 각기 다른 이들은 올해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살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A씨와 B씨는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에 집에서 자녀를 숨지게 하고 같은 날 법정에 섰다. 본인 역시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C씨는 사건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부터 아이에게 자폐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생해가며 기른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한 A씨와 B씨의 소식에도 마음이 무거웠지만, 자폐 진단을 받자마자 아이를 죽인 C씨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자의 사례들이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며 여러 어려움에 부딪힌 끝에 맞이한 파국이었다면, C씨는 평소 생활고나 가정불화도 없던 상태에서 오직 예고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삶의 의지를 꺾었다. C씨의 범죄는 한국 사회에서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가늠케 하는 일종의 징후다.
발달장애 가족의 비극은 처음이 아니다. 올해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9건이 넘는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이보다 많았을 터다. 비극이 벌어질 때마다 사회는 탄식하고 슬퍼하기를 반복했다. 관련 보도가 이어졌고, 최근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등장인물이 나오는 드라마도 잇따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발달장애인 예술가를 초청하고, 용산 대통령실에 이들이 그린 그림도 걸었다.
이런 변화에도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삶은 송두리째 바뀐다.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책임이다. 자신이 눈을 감은 후 아이의 삶을 생각해 자녀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게 발달장애아 부모 사이에서는 흔한 소원이다. 최근 이들 발달장애인의 죽음을 전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저도 발달장애아를 키우고 있습니다. 맛있는 것 먹고 즐겁게 살다가 같은 날 가려고 합니다. 이 죄를 어떻게 갚을지…'
예고된 죽음을 그저 손 놓고 지켜볼 뿐 아니라 한국 사회는 이를 방조(남의 범죄 수행에 편의를 주는 모든 행위)한다. 단순히 '자녀가 발달장애를 가져서 죽였다'라는 사실에만 주목하고 안타까워한다면 살인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발달장애 자녀의 양육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지원이 있었다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살펴야 마땅하다.
현실은 다르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장애인 예산이 13% 늘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복지 지출 규모는 0.61%(2018년 기준)에 그친다. 국가는 고작 0.6%를 책임지고, 나머지 99.4%는 가족이 짊어지는 현실은 명백한 방조다. 사람을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는 처벌한다는 법(형법 제252조)이 있는데도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은 예외인 양 다뤄진다.
잘난 듯 이야기하지만 나 역시 살인의 방조자가 아닐 수 없다. 그간 발달장애인과 가족, 주변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 여러 번 기사로 써왔다. 부당한 현실의 고발이 언론인의 본분이라고 여겼지만, 혹시 암울한 내일만 상상하게 하는 기사들도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평균 기대수명 100세 시대에 국내 자폐성 장애인이 사망할 당시 평균 수명은 고작 23.8세(2020년 기준)다. 마음 한 편에 죄책감이 질척하게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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