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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육사오와 남북관계

입력
2022.09.06 00:00
27면
영화 '육사오' 스틸컷.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영화 '육사오' 스틸컷.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추석 연휴를 겨냥한 개봉영화 리스트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영화는 '공조2: 인터내셔날'과 '육사오'였다. 액션과 코미디라는 장르는 다르지만 남북한의 대치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공조2: 인터내셔날'이 개봉 1주일 전부터 예매율 1위를 달린 것은 예상할 만한 일이었다. 5년 전 '공조'의 현빈과 유해진, 임윤아의 연기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하다. 그러나 '육사오'가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 반란'을 일으킨 것은 솔직히 의외였다.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말년 병장이 우연히 손에 쥐게 된 1등짜리 로또복권이 바람에 북측으로 날아가면서 벌어지는 남북한 병사들의 밀당과 협상과정이 주는 웃음 포인트는 적지 않았다. 20여 년 전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마주인 듯, 패러디인 듯한 장면들이 숨어있고 배우들의 코믹연기도 맛깔스러웠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을 두고 대치하는 남북한 선무방송 요원들이 썸을 타고 남북한 병사들이 적진에서 위장 근무하는 것 같은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은 신파에 가깝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정작 눈앞의 남북관계는 영화가 보여주는 한가하고 익살스러운 풍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험악하다. 북한이 대남 보복과 박멸을 거론하며 코로나19 유입의 진원으로 지목했던 '색다른 물건짝'은 1등짜리 로또복권을 지칭한 것이 아니었을뿐더러 김여정은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마저 대담하게 걷어차버렸다.

최근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와 실제 남북관계 사이의 처절한 간극과 지독한 부조화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상업 영화의 목표는 대중들의 인식에 상상력을 입혀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것인 만큼 관객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출발점일 것이다.

북한에 대한 남한 주민의 인식 변화를 꾸준히 보여주는 조사결과 중의 하나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실시하고 있는 '통일의식조사'이다. 이 조사는 북한에 대한 인식을 협력대상, 지원대상, 경쟁대상, 경계대상, 적대대상의 5개로 분류해 5지 선다형 질문을 던진다. 지난 5년간 조사결과를 보면 북한을 협력이나 지원대상으로 보는 비율이 경계나 적대대상으로 보는 비율보다 대략 6대 4 비율로 높게 나타난다. 2017년 북한의 도발이 거듭되면서 협력지원 대상이라는 응답이 50%대로 떨어지거나 2018년 남북·북미정상회담 국면에서 경계나 적대대상이라는 비율이 20%대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 추세는 북한의 잇따른 도발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 주민에 대한 지원은 재개되어야 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관리를 위한 협력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다수로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대북 강경발언과는 달리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통해 식량, 농업기술, 의료, 전력, 인프라 등 북한의 민생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제안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인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대북제안에 '담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북한의 도발 징후에는 효과적 억제력으로, 무모한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으로 맞대응하되 대북제안의 담대함만큼은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옳다. 임기 후반으로 가며 널뛰기를 거듭했던 과거 보수정부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 스스로 대북정책을 '이어달리기'라고 표현한 만큼 달리기의 목표는 1등이 아니라 바통을 놓치지 않고 결승선에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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