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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은 '별 따기' 신설은 더디고... 대학진학보다 어려운 '특수학교' 문턱

입력
2022.09.05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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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3명만… 수요 비해 공급 턱없이 부족
"장애 학생은 교육권 없나" 학부모 호소 무위
'무릎 호소' 불구 신설 더뎌 기존 학교도 과밀
"학교 설립 초기부터 주민과 상생안 고민해야"

지난해 5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 영화는 2017년 학부모들이 강서구에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과정을 담았다. 주민 반대를 이른바 '무릎 호소'로 설득해 만들어진 서진학교는 2020년 3월 개교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지난해 5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 영화는 2017년 학부모들이 강서구에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과정을 담았다. 주민 반대를 이른바 '무릎 호소'로 설득해 만들어진 서진학교는 2020년 3월 개교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죠. 학교에 안 보낼 수도 없고…”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모(47)씨는 열한 살 아들의 진학 고민에 요즘 밤잠을 설친다.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는 김씨 아들은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그는 중학교만큼은 아들을 특수학교로 보내고 싶지만 입학 문턱이 너무 높아 속앓이만 하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니고도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활약한다. 그러나 드라마와 현실의 간극은 크다.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육권이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특수학교가 많지 않은 탓이다.

특수학교 '포화'... "가고 싶어도 못가요"

지적장애ㆍ지체장애인은 특수교육 대상자로 분류돼 특수학교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특수교육 대상자에 비해 특수학교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4일 교육부의 ‘2022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특수교육 대상자는 1만3,366명인데 특수학교(32개)에 다니는 학생은 4,480명(33.5%)에 불과하다. 자치구별 편차도 크다. 25개 자치구 중 8곳에는 아예 특수학교가 없다. 전국으로 확대해도 올해 특수교육 대상자(10만3,695명) 가운데 특수학교 재학생은 2만7,979명(27.0%)에 그치고 있다. 부모들이 특수학교 입학을 ‘하늘의 별 따기’로 부르는 이유다.

특수교육 대상자 대비 특수학교 재학생 비율. 그래픽=신동준 기자

특수교육 대상자 대비 특수학교 재학생 비율. 그래픽=신동준 기자

김씨만 해도 4년 전 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 특수학교에 지원했지만 6명 선발에 50명이 몰리는 바람에 탈락했다. 특수학교는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어디서든 지원 가능하다. 이 때문에 아예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에 살던 김씨 지인도 아이가 부산 특수학교 진학에 성공하자 온 가족이 이사를 갔다.

지적 장애가 있는 12세 딸을 키우는 차윤진(43)씨 역시 최근 고민이 깊다. 아이가 일반학교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는 걸 부쩍 버거워하는데 특수학교에 빈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아서다. 차씨는 “처지를 잘 모르는 분들은 왜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 고생시키느냐고 의아해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특수학교는 이미 포화 상태다. 특수교육법상 특수학교는 학급당 편성 인원이 유치원은 최대 4명, 초ㆍ중학교는 6명, 고교는 7명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러나 서울 특수학교 13개교(38%)가 이 기준을 초과한 학급을 운영 중이다. 엄밀히 말하면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특수학교 관계자는 “대다수 특수학교가 더 이상 교실을 만들 수 있는 면적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공간이 빽빽하다”고 설명했다.

'무릎 호소' 언제까지... 주민 상생 방안 모색해야

2017년 9월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9월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하지만 특수학교 신설은 더디기만 하다. 최근 10년간 개교한 특수학교는 5곳. 가장 최근에 문을 연 학교가 주민 반대를 학부모들이 이른바 ‘무릎 호소’로 설득해 만들어진 강서구 서진학교로 2020년 3월 개교했다.

특수학교 설립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부지 선정이다. 특수학교를 지으려면 최소 4,000㎡ 이상의 면적이 확보돼야 한다. 서울에서 폐교 부지가 아니면 이런 넒은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서진학교와 2019년 개교한 서초구 나래학교 모두 각각 옛 공진초교와 옛 언남초교 터에 지어졌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폐교 부지가 수시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설립 논의가 시작된 중랑구 동진학교는 후보 부지가 8차례나 바뀌는 등 우여곡절 끝에 13년 만인 2025년 9월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30년까지 특수학교 설립 계획을 밝힌 금천구와 성동구, 양천구는 아직 후보 부지조차 정하지 못했다.

어렵게 부지를 구해도 더 큰 난관이 남아 있다. 지역주민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어느 지역에서건 반대가 훨씬 많아 구청과 교육청은 특수학교 부지에 주민들도 이용 가능한 편의 시설을 함께 건립하는 방법으로 설득에 나선다. 지역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광진구 광진학교의 수영장, 강남구 밀알학교의 음악관이 대표적이다.

박지연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지자체와 교육청이 주민과 상생하는 방안을 설립 초기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순경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대표는 “특수학교가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도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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