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위기에 처한 고래의 외침이 들리나요

입력
2022.09.06 04:30
25면
동해 목시조사에서 흑범고래 수백여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된 건 2005년 이후 17년 만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동해 목시조사에서 흑범고래 수백여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된 건 2005년 이후 17년 만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국내에는 해양동물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수의사가 많지 않다. 14년간 야생연구, 사육시설, 보전기관 등을 거친 덕분일까. 필자는 '국내 첫 해양동물 전문 수의사'로 불리고 있다.

고래와 교감하는 멋진 모습을 꿈꿔온 나의 목표는 이제 고래류와의 공존이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고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원' 또는 '식량'이라는 개념보다 '(무조건) 보전해야 할 동물'이라는 관점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 두 가지 시선만 있을 뿐이다. 고래류가 생태계 일부로서 생물다양성을 위해 인간과 공존해야 한다는 과학적 시각은 아직 많지 않다.

고래류를 보전하고 사람과 공존하려면 먼저 그들이 처한 위험 상황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꼬리가 잘렸거나 입에 악성종양이 관찰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낚싯줄이나 암을 유발하는 오염물질이 그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확인하기 어렵다. 다쳤거나 아파 보이는 야생동물을 직접 잡아 의료처치를 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과정이 매우 위험하고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차라리 추정되는 원인을 찾아 다른 개체들의 재발을 막는 게 옳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우영우(왼쪽)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 무리. 연합뉴스, 사진 제공=나무엑터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우영우(왼쪽)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 무리. 연합뉴스, 사진 제공=나무엑터스

죽은 개체가 발견된다면 '부검'이라는 과정을 통해 보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는지, 염증이나 종양이 있는지, 기생충이 과도한지, 골절이나 상해가 있는지 등을 볼 수 있다. 조직검사, 세포학적 검사까지 더하면 문제점뿐 아니라 원인 추정도 대책 마련도 가능하다. 부검은 사인뿐 아니라 성장과 성성숙 같은 생애주기는 물론 그 종이 속한 먹이사슬과 생태계까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정보는 한두 마리를 부검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정보들이 계속 쌓이면 같은 환경 안에서 같은 생활습성을 가지는 종 전체가 처한 위험을 이해할 수 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4화에서 주인공이 생각만 해도 귀엽다는 듯 웃음을 머금고 소개한 상괭이는 해마다 수천 마리가 죽어가지만, 한 해 부검되는 상괭이 숫자는 기껏해야 50여 마리다. 범고래와 향고래도 최근 사체가 떠밀려 온 게 수차례지만 부검 기회도 없이 바로 땅속에 묻혀버렸다.

얼마 전에는 전남 여수시에서 꼬마 향고래가 해안가로 밀려왔으나 혈액검사 한 번 없이 되돌려 보내졌다. 건강한 고래는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다. 고래가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불법포획’이나 ‘돌고래 해방’ 이외에도 공존을 위해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들이 많다. 우리도 고래도 그저 지구생태계에 속한 일부이지만 다른 종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이영란 오산대 교수 (해양동물 수의사)

이영란 오산대 교수 (해양동물 수의사)


이영란 오산대 교수·해양동물 수의사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