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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두구육 표현이 불편한 '진짜 이유'

입력
2022.09.03 14: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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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전 대표는 고사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ㆍ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에 빗대 "(선거 과정에서) 저야말로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팔았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반려인 사이에선 정치권 논쟁과 별도로 개고기를 언급한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연합뉴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전 대표는 고사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ㆍ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에 빗대 "(선거 과정에서) 저야말로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팔았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반려인 사이에선 정치권 논쟁과 별도로 개고기를 언급한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연합뉴스

최근 양두구육(羊頭狗肉), 개고기라는 표현이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 양두구육은 '양머리를 내걸어 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라는 뜻으로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변변치 않다는 뜻이다. 양은 그럴싸한 동물, 개고기는 변변치 않은 것을 의미한다.

정치권에서의 논쟁과 별도로 반려인 사이에서는 변변치 않은 것을 굳이 개고기로 표현한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려인구가 1,500만 명에 달하고, 정부가 사회적 논의기구까지 만들어 개 도살과 개 식용 금지를 추진하고 있는 시대와 맞지 않다는 거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기자에게 "양두구육이란 표현은 개고기가 당연하다는 의미를 은연중 전파하는 효과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식용 종식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한국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식용 종식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라는 표현도 생각해보자.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유래를 보면 멍멍이, 도그(dog)가 아닌 게 대부분이다. 먼저 언론과 방송에도 몇 차례 소개된 적 있는 '개판 5분 전'이다. 난장판 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의 어원은 몇 가지 설이 있다. 6·25전쟁 때 정부가 피란민에게 무료 배식 전 솥뚜껑을 열기 5분 전 '개판(開版) 5분 전'을 외쳤고, 굶주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개판은 뚜껑을 연다는 의미다.

씨름에서 승부가 나지 않을 때 심판이 경기를 다시 하라는 개판(改-)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재경기 전 선수뿐 아니라 응원객도 옥신각신하면서 무질서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전북 정읍의 한 개도살장에서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개들이 발견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전북 정읍의 한 개도살장에서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개들이 발견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접사 '개'를 사용하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개꿀, 개떡에서의 개는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을, 개꿈, 개수작에서는 '헛된', '쓸데없는'을, 개망나니, 개잡놈에서는 '정도가 심한'을 뜻한다.

실제 개가 멍멍이를 뜻하는 경우도 있다. 비속어인 개새끼는 개의 새끼, 강아지에서 뜻이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16세기 문헌에는 명사 '개'와 '삿기'가 결합한 '개삿기'가 등장하며 17세기에는 개의 옛말인 '가히'와 명사 '삿기'가 결합한 '가희삿기'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강아지를 뜻하는 것이지 문맥상 남을 욕하는 뜻으로 쓰인 게 아닌데 시대가 변하면서 뜻이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건 최근에 접사 '개'를 이용해 만들어진 신조어들은 표준어는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꿀은 벌집에 들어 있는 상태의 꿀이 사전적 의미인데, 시대가 변하면서 별다른 노력 없이 예기치 않게 큰 이득을 얻었을 때의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개좋아', '개웃기다'라는 말도 '정도가 심한'을 뜻하는 '개-'를 확장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때 '개'는 부정적 뜻을 갖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쓰여야 하므로 표준어가 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은 '아주 좋아', '굉장히 웃기다'라는 표현으로 바꿔 쓰길 권한다.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반지하 주택 창문 앞을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고 있다. 전에는 도둑고양이로 불렸지만 이제는 길고양이, 동네고양이로 불린다. 뉴시스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반지하 주택 창문 앞을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고 있다. 전에는 도둑고양이로 불렸지만 이제는 길고양이, 동네고양이로 불린다. 뉴시스

이미 뜻이 변질된 채 사용되고 있는데 어원을 밝히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또 양두구육처럼 이미 관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지적하는 게 '프로불편러'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굳이 공들여 어원을 소개한 이유는 언어가 가진 힘 때문이다.

도둑고양이를 길에서 산다는 뜻의 길고양이에서 나아가 동네에서 함께 사는 존재를 강조한 동네고양이로 부르고 있는 것, 물고기를 고기가 아닌 '물살이'로 부르자는 운동과 같은 맥락이다.

동물뿐 아니라 명절만 되면 도련님, 아가씨 대신 결혼 후 평등한 호칭을 사용하자는 얘기가 빠짐없이 나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시대가 바뀌는 만큼 성숙한 언어문화도 필요하다. '개고기', '개'라는 단어를 쓸 때 정말 써야 되는 상황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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